‘리더십 부재’ 망연자실 침례교단… 교단정치 민낯 폐해 축소판

입력 2024-05-03 12:18 수정 2024-05-08 15:29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건물. 국민일보DB

현직 총회장과 제1부총회장까지 직무가 정지된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 내부 분위기는 당혹감을 넘어서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한국 교회사에서도 초유의 일인 동시에 한국교회 교단정치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교단 안팎에서 나온다.

교단 파행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기침 총회는 지난해 9월 113차 정기총회 직후부터 총회장 및 제1부총회장 직무정지 관련 소송전에 들어갔다. 지난 1월 총회장 직무 정지에 이어 지난 30일 3개월 만에 총회장 역할을 대행하는 제1부총회장까지 법원의 직무 정지 결정을 받은 기침은 114차 총회가 열리는 오는 9월까지 사실상 사역 동력을 상실했다. 총회 리더십 부재로 굵직한 행사 등이 대부분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

총회장 직무정지 사태 이면에는 교단 신학교인 한국침례신학교(침신대) 이사 파송을 두고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떼거리 정치’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9월 113차 정기총회 당시 총회장 출마 후보들을 지지한 그룹들은 총회를 장악해야 침신대 이사 파송에 주도권을 가질 수 있기에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한 선거 운동을 펼쳤다.

후발 주자로 나선 총회장 후보가 정기총회 두 달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무리하게 총회장 선거에 뛰어든 것도 교단 정치로 인한 복잡한 역학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단 파행을 막고자 정기총회 직후 양측의 화해를 주선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로 기침 소속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충격과 분노 허탈과 실망감이 뒤섞인 모양새다. 수도권 중형교회에서 담임하는 A목사는 3일 “한 아이를 두고 솔로몬 왕 앞에서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여인들의 모습이 딱 우리 교단의 상황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기도가 절로 나온다”며 “교단 소속 목회자들은 이 사건의 원인이 정치 싸움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세력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로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9월 113차 기독교한국침례회 정기총회 현장. 국민일보DB

익명을 요청한 B목사도 “교단 소속 목회자들은 지난 1월 총회장 직무 정지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래서 제1부총회장 직무 정지 소식이 다소 약하게 느껴지는, 이미 면역이 됐다는 우스갯 소리도 들리는데 참으로 절망스러운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총회는 이 문제를 두고 쉬쉬하려고만 했는데 어쨌든 초대형 문제가 터진 만큼 이제는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교단이 희망적으로 향하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제1부총회장 직무 정지 원인으로는 ‘절차적 하자’ 문제가 꼽힌다. 홍 목사는 제1부총회장으로 예비등록을 했으나 기침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총회 규약 16조 1항(총회장 및 제1부총회장의 자격 조건을 ‘목사 인준 후 본 교단 가입교회에서 20년 이상 흠 없이 목회한 자’로 규정)을 이유로 제동을 걸면서 본등록을 하지 못했다. 28년간 군목으로 있었던 홍 목사는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이에 대한 내용을 침례신문에 광고하면서까지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당시 총회 석상에서 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홍 목사의 제1부총회장 후보 자격을 부여한 의결이 이뤄졌고, 홍 목사는 단독 후보로 제1부총회장에 선출됐다. 대의원들이 정기총회에서 상정되지 않은 안건을 두고 쥐락펴락하는 문제 역시 교단 정치의 폐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C목사는 “우리 교단의 취약한 점은 대의원들이 문제 제기할 부분이 있으면 규약 변경 절차를 거친 뒤 해야 하는데 정기총회 현장에서 분위기를 몰아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데 있다”며 “이번 사건을 통해 ‘절차상 하자’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총회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각성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