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북미에서 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법제화가 준비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불치병 난치병 환자를 대상으로 조력자살을 일부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교계 전문가들은 생명경시 우려를 지적한다.
조력자살은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직접 약물 등을 투여해 스스로 죽음을 맞는 방식을 의미한다.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의 보도를 보면 데임 에스터 란첸 의원이 제안한 조력자살법 개정안은 20만명 이상의 서명을 얻어 의회에 상정됐다. 해당 법안은 “영국에서 죽어가는 이들이 존엄하게 삶을 마감하기 위해 의료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달에는 카트린 보트랑 프랑스 노동·보건·연대 장관이 조력 자살 법안을 국무회의에 제출했다. 의사가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사망을 직접 도울 수 있게 하는 법안이 본격적 논의에 들어간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조력자살을 법제화하겠다고 밝힌 지 한 달 만이다.
스코틀랜드 의회에서도 지난 3월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BBC에 따르면 리엄 맥아더 스코틀랜드 자유민주당 의원은 의회에 ‘불치 상태의 성인을 위한 조력자살’ 법안을 제출했다. 해당 법안은 치료 가능성이 없는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의사 2명으로부터 조력자살을 결정할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만 사망을 위한 의학적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만약 법안이 통과될 경우 영연방 구성국 가운데 최초다. 현재 스코틀랜드에서는 타인의 자살을 돕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벨기에는 2014년 안락사 나이 제한을 폐지했으며, 네덜란드도 지난해 나이 제한을 없앤다고 발표했다. 캐나다는 2016년, 뉴질랜드는 2020년 국민투표를 통해 안락사를 허용했다.
한국은 어떨까. 현행 법체계에서 의사의 조력자살을 포함해 안락사는 모두 불법이다. 다만 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은 허용하고 있다.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인공호흡기 착용과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다. 진통제 투여와 영양분 공급 등은 계속된다.
조력자살을 둘러싼 각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교계에선 탈종교 흐름이 뚜렷해지고 성경의 메시지가 약화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 김동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는 2일 “성경은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면서 “죽음에 대한 직접적 선택을 인간이 내리는 데는 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력자살 요구 여론이 일부 형성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 김 교수는 “국내에서는 이미 현행법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며 “다만 성경적 관점이나 고려 없이 법안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다”고 밝혔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