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지울 수 없다”…철거된 ‘조선인 추도비’ AR로 재탄생

입력 2024-04-30 18:33
29일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현립 공원 '군마의 숲'에 있는 조선인 추도비에서 철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군마현에서 지난 1월 철거된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가 증강 현실(AR) 기술을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어플)으로 재현됐다고 30일(현지시간)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에서 ‘AR 조선인 추도비’ 앱을 켜고 군마현 다카사키시 현립 공원 군마의 숲 현장에서 추도비 철거지를 비추면 추도비가 가상으로 재현된다.

가상 추도비는 실제 설계도와 이미지를 토대로 재현됐다. 추도비는 360도 전체로 돌아가 모든 방향에서 볼 수 있으며, 확대하면 추도비에 적힌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 문구도 읽을 수 있다.

군마현 당국이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를 철거한 뒤인 지난 3일 빈 공간으로 변한 추도비 터(아래)와 원래 모습(위). 연합뉴스

일본 정보과학대학원대학의 마에바야시 아키쓰구 교수 등 3명이 추도비 앱을 만들었다. 마에바야시 교수 등은 지난 2월부터 추도비 철거 경위를 듣고 이 같은 프로젝트를 준비했다고 한다.

마에바야시 교수는 “애초 조선인 추도비는 일본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고 다음 세대에 기억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추도비가 철거된 것을 알고서 지금의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들은 추도비 크기를 알아보고 공간 위치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철거지 주변 사진 300장 이상을 찍는 등 정보를 모았다고 한다.

그는 “군마현의 대집행으로 비는 파괴됐지만 장소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면서 “과거의 역사를 지울 수 없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장소로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는 일본 시민단체가 한반도와 일본 간 역사를 이해하고 양국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2004년 설치했다.

그러나 군마현 당국은 2012년 추도비 앞에서 열린 추도제에서 한 참가자가 ‘강제 연행’을 언급했다는 점을 문제 삼아 2014년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했다. 이후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자체 처분이 적합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군마현은 지난해 4월 추도비 철거 명령을 내리고, 10월에는 연내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고지했다. 이후 시민단체가 철거 요청에 응하지 않자 지난 1월 행정 대집행을 통해 결국 철거를 강행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