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척, 연 7만 선원 드나드는 항구는 복음의 허브”

입력 2024-04-29 15:11 수정 2024-04-29 15:23
싱가포르 항구. 이승재 선교사 제공

싱가포르 항구는 지리적으로 인도양 태평양 대서양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중간 기항지다. 매일 100척 내외의 선박이 드나들고 1년에 7만명이 넘는 선원이 이곳을 지나간다. 중국 상해에 이어 2번째로 교역량이 많은 싱가포르 항구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이승재(58) 목사를 27일 만났다.

이승재(오른쪽) 선교사가 지난 달 싱가포르 항구에 정박 중인 선박의 선원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승재 선교사 제공

이 목사는 자신을 ‘항목’(Port Chaplain)으로 소개했다. 군목 교목과 비교하면 한국교회에서 생소한 개념인 항목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했다. 말 그대로 항구를 무대로 활동하는 목사다. 항목은 주로 부두에 정박한 선박을 방문해 선원들과 만남과 교제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들에 필요한 상담과 기도 그리고 성경을 비롯한 기독 자료를 나누는 사역을 한다. (사)한국외항선교회(대표 노영상 목사) 소속인 이 목사는 2000년대 초반 헝가리를 품고 선교사역을 준비하던 중 선교본부의 지시로 뜻밖의 싱가포르 사역을 시작해 현재에 이르렀다.

이승재 선교사가 지난해 싱가포르 항구에서 만난 선원에게 세례를 베푸는 모습. 이승재 선교사 제공

여러 나라로 선교사가 찾아갈 필요 없이 선원들이 항구로 찾아 들어온다는 점이 선원 선교의 장점이다. 부두로 들어오는 선박 90%가 급유를 받는데 이때가 선원들과의 접촉할 절호의 기회다. 특히 야간급유는 선원들과 깊이 있는 상담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때 항목이 건네는 신앙 서적은 선원들에게 반가운 선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선교사는 “싱가포르에 입항하는 배에는 공식적인 미전도 국가 출신 선원들이 적지 않다”며 “컨테이너 화물의 경우 정기적인 선박 항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한 번 만났던 선원을 다시 만날 수 있고 단계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난 선원들 가운데 신앙이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선박 교회가 세워지는 등 열매가 열리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사회를 이해하려면 페라나칸(Peranakan)이라는 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로 ‘혼혈의 후손’이란 사전적 의미를 넘어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과 원주민 사이에서 생겨난 물리적 융화와 그들의 자손이 대대로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적 융합이 페라나칸이다. 이런 문화적 특징은 종교 분포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계 인구가 다수를 이루는 만큼 불교(33%)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기독교(18%) 이슬람교(14%) 도교(10%) 힌두교(5%) 등이 고른 분포를 나타낸다. 이 선교사는 “여러 종교의 사원과 교회 등이 좁은 공간 안에 산재해 있지만, 종교로 인한 분쟁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아랍스트리트에 자리한 이슬람 사원.

이런 상황은 선교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사회 속에서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싱가포르 법은 노방전도나 축호전도를 철저히 금지한다. 대신 소그룹 형태로 모이는 셀 교회가 일찍부터 발달했다. 이 선교사는 “싱가포르에는 500개가 넘는 교회가 있고 복음도 퍼져 있지만 종교 간 화합을 강조하는 정책으로 인해 교회 밖에서 선교의 열매를 맺기는 어렵다”며 “다만 기존에 세워진 교회를 통해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데 가정으로 이웃을 초청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대표적인 전도법”이라고 소개했다.

싱가포르에는 총 12개인 한인교회가 있다. 그중 여러 교회가 공유교회 개념으로 공간을 나눠 사용하거나 사무실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등 열악한 상황이다. 이 선교사가 시무하는 싱가포르 주님의교회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선교사는 “임대료를 비롯한 전반적인 물가가 상승하면서 한인교회들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며 “최근 한 한인교회는 목회자 사례를 주지 못해 담임목사가 떠났고 후임자로 가정이 없는 독신 목회자를 구하고 있을 정도”라고 밝혔다.

이런 고물가 상황은 홍콩의 중국 반환 후 시간이 흐를수록 싱가포르에 다국적 기업 본부가 몰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이 선교사의 분석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보고서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싱가포르에는 지난해 홍콩보다 약 3배 많은 4200개의 다국적 기업 본부가 설립됐다. 이 선교사는 “사실상 싱가포르는 선교사가 있을 수 없는 곳이 됐다”며 “20년 전 70만원 남짓이던 아파트 월 임대료가 이제는 최소 400만원까지 올랐다”고 토로했다. 이 선교사는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싱가포르 교회에 관심 가질 이유가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싱가포르 안에 성도 수 1만명이 넘는 대형 교회가 4곳에 달한다. 이곳 교회들의 특징은 교인들의 헌금 수준이 높다는 것”이라며 “선교적 역량이 뛰어난 한국교회와 자본력이 강한 싱가포르교회가 세계선교를 위해 연대한다면 엄청난 상승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승재 선교사가 27일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 정기총회가 열린 싱가포르 콥톤킹스호텔 앞에서 화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싱가포르=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