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압기 등 전력 설비를 생산하는 효성중공업은 지난 26일 올 1분기 매출 9845억원, 영업이익 562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1년 전과 비교해 매출은 16.3%, 영업이익은 298.2% 증가했다. 앞서 1분기 실적을 발표한 HD현대일렉트릭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8010억원, 1288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0.9%, 178.2% 급증한 수치다. 이들과 국내 전력기기 3사를 이루는 LS일렉트릭도 29일 오전 1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증권업계에선 ‘어닝 서프라이즈’ 관측이 나온다.
인공지능(AI)과 전기차 등의 확대로 글로벌 전력 수요가 폭증하며 국내 전선·전력기기 업계가 호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 AI 반도체 생산 공장과 데이터 센터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여기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과 변압기 등의 설비 수요가 덩달아 늘어나고 있어서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하듯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의 주가는 연일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반년 새 HD현대일렉트릭(239%), LS일렉트릭(129%), 효성중공업(65%) 등 모두 급등세를 탔다.
업계 안팎에선 올해가 전력 시장의 슈퍼 사이클 원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공장, 데이터센터 등은 24시간 전력 가동이 필수다. 미국 에너지부(DOE)에 따르면 미국 내 변압기와 전선은 70%, 전력 차단기 등은 60% 이상이 30년 넘게 사용돼 교체 주기에 진입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28일 “코로나19 시기에 무너졌던 글로벌 공급망이 다시 복구되면서 AI 등의 수요 폭증이 맞물렸다”며 “유례없는 슈퍼 사이클이 오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많다”고 말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막대한 에너지 공급이 필요한 반도체, AI 데이터 센터, 친환경 에너지 등 3대 분야에서 글로벌 확대 경쟁이 수년간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미·중 갈등도 국내 기업들에 호재로 작용한다. 미국의 탈(脫)중국 공급망 정책으로 한국산 전선·전력기기 수요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국내 전선 업계 1위 LS전선의 미국 해저 사업 자회사인 LS그린링크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투자세액공제 9906만 달러(약 1365억원)를 받는다. 2위 전선 기업인 대한전선도 최근 미국 남동부 플로리다에서 1100억원 규모의 전력망 교체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말 미국 실리콘밸리 전력망 현대화 사업에 참여해 총 782억원 규모의 변압기 9대 공급 계약을 따냈다. 업계 관계자는 “북미와 더불어 유럽, 중동 등의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력 수요 증가에 따라 해저케이블, 초고압 변압기 등 국내 기업의 주력 제품 수요도 증가세다. 영국 원자재 시장조사기관 CRU는 세계 해저케이블 시장이 2029년 29조5000억원 규모로 2022년과 비교해 4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 센터의 고전압 전력을 감당할 수 있는 초고압 변압기도 수요가 몰리는데, 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HD현대일렉트릭 등 국내외 5개사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초고압 변압기 시장 등은 중장기적으로 꾸준한 수요 증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