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톡]자살=선택할 수 없는 대안···언중위 결정이 반가운 이유

입력 2024-04-18 15:22
자살은 결코 위기 상황에서 선택될 수 없는 결론이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에 제동을 걸기로 한 언론중재위원회의 결정이 반가운 이유다. 픽사베이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함께 마련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5가지 원칙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 원칙은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암시하는 표현 대신 사망 사실을 알리는 표현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목숨 끊다’ ‘극단적 선택’ ‘목매 숨져’ ‘투신 사망’ 등과 같은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처럼 객관적 사망 사실에 초점을 둔 표현을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최근 의미 있는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지난 15일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쓴 기사에 대해 5월부터 시정 권고를 하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가 자살을 사망자의 능동적 선택으로 오인하게 하고, ‘자살이 선택 가능한 대안 중 하나’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 배경이었습니다.

동시에 ‘극단적 선택’이란 표현이 자살로 인해 발생하는 당사자 집단(유가족, 지인 등)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자살의 사유는 지극히 내밀해서 알기 힘든데도 차후에 유가족들이 “네 가족은 왜 그런 선택을 했어? 왜 너는 그 선택을 말리지 못했어?”라는 질문을 받으며 이중적인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가 지난해 7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국민일보 2023년 7월 12일자)에서도 강조한 내용입니다. 나 교수는 “자살의 대체 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극단적 선택’ 대신 자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자살예방 사역을 펼쳐 온 한국교회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란 기치를 들고 ‘자살은 결코 위기 상황에서 선택될 수 없는 결론’임을 강조해왔던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는 언중위의 결정 소식을 접한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오랜 기간 동안 이 용어에 대해 고민해 왔음을 고백했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되면서까지 우울증과 평생 싸워 왔던 레지던트 동기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동기의 죽음을 선택이라고 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극단적 선택’이란 용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내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껴져 포기하고 싶을 때도, 동기를 생각하며 계속 주장을 해왔다”고 밝혔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를 찾을 때, 그의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시고, 충성스럽게 그와 교제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시 34:17~18)이라는 약속을 기록합니다. 그 약속은 ‘마음이 상한 자’뿐 아니라 ‘마음이 상한 자의 곁에 함께 하는 이’에게도 통용됩니다. 상처받은 자, 고통을 겪는 자의 곁에서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이 기독교인과 신앙 공동체의 중요한 사명임을 새겨야 할 오늘입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