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천사섬 섬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조성된 ‘12사도 예배당’이 본래 명칭을 되찾았다. 불교계의 종교차별 민원으로 표지판이 교체된 지 1년 만이다. 사도 명칭을 새긴 새 표지판은 지역 주민 10여명의 모금과 천사섬 숙박업소 직원의 재능 기부로 제작됐다. 새 표지판 옆에 남아 있는 기존 표지판은 오는 6월 철거가 논의되고 있다.
“표지판은 만들고 있었는데 선뜻 설치하진 못했습니다. 신안군에서 철거할까 봐 눈치가 보였거든요. 국민일보 보도(국민일보 1월 23일자 33면 참조)에서 신안군 입장 확인한 뒤 ‘설치해도 되겠다’ 안심했어요. 표지판은 지난달에 다 만들었습니다.”
김양운 소악도 이장은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점·소악도가고싶은섬협동조합이 어제(15일)부터 표지판 설치에 나섰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이장은 “‘12사도 표지판이 어디갔냐’는 항의 전화를 지난 1년 동안 적지 않게 받았는데 이제 부담을 좀 덜게 됐다”며 “잃어버린 1년을 되찾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섬티아고 순례길 관광객이 최근 1년간 10명에서 7명꼴로 줄어들었다”며 “이전만큼 많은 순례객의 발길이 이어지길 바란다. 이곳 주민들도 섬을 더 발전시키고, 무엇보다 친절한 태도로 순례객들을 맞이하겠다”고 전했다.
섬티아고 순례길은 전남 신안군의 5개 섬(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딴섬)을 잇는 12㎞ 구간을 일컫는다. 2017년 전남 ‘가고 싶은 섬’ 조성 사업에 선정된 뒤 섬 곳곳에 마련된 12개의 작은 건물이 12사도 예배당이다.
2019년 완공 당시 예배당 앞엔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이름을 딴 목재 표지판이 세워졌으나, 지난해 4월 표지판은 각각 건강의집 감사의집 등으로 교체됐다. 조계종이 문화체육관광부 공직자종교차별신고센터에 종교 차별 민원을 제기하면서다. 순례길 작가들은 준공 전 예배당을 중의적인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목적에서 예배당에 두 가지 명칭을 붙였는데, 베드로의집(건강) 안드레의집(생각) 야고보의집(그리움) 요한의집(생명평화) 빌립의집(행복) 바르톨로메오의집(감사) 도마의집(인연) 마테오의집(기쁨) 야고보의집(소원) 유다다대오의집(칭찬) 시몬의집(사랑) 유다의집(지혜) 같은 식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주민들은 총 4곳(베드로의집·요한의집·필립의집·바르톨로메오의집)에 직접 제작한 표지판을 세웠다. 1년 전 들어선 표지판은 주민들이 철거할 수 없어 나란히 세워져 있는 상태다.
신안군 작은섬정원과 관계자는 “애초 섬 관광 활성화와 주민들의 자립이 조성 사업 목적이었다”며 “오는 6월까지 기존 표지판을 철거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실질적인 순례길 관리 주체는 기점·소악도가고싶은섬협동조합이었다. 예배당은 군 소유지만 당초 조성 당시 주민들의 사유지를 일부 빌려 순례길이 조성됐다”며 “종교 차별 민원이 또 제기되더라도 주민들이 세운 표지판은 철거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