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다 무국적자 될 뻔한 남매, 대법원서 구제

입력 2024-04-09 17:39 수정 2024-04-09 18:03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쭉 자란 남매가 무국적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가 대법원에서 구제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0대 A씨 남매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국적 비보유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남매는 1998년과 2000년 한국 국적 부친과 중국 국적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들이 태어났을 시점에는 부모가 혼인 신고를 올리지 않은 상태였다. 부친은 2001년 6월 남매에 대한 출생 신고를 했다.

국적법에 따라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인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출생 신고로 한국 국적을 얻으려면 부모가 법적으로 혼인 신고를 마친 상태여야 한다.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 가능한 절차고, 성인이 된 후 별도의 귀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법적으로 남매는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는 조건이었으나 행정청은 출생신고 후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했다. 부모가 2008년 정식으로 혼인 신고를 하면서, 남매가 태어날 때 했던 출생신고는 ‘법률혼 아닌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난 혼외자의 출생신고’라 말소됐다. 그런데도 남매가 각각 17세가 된 해에는 주민등록증이 발급됐다. 대학 진학도 했고, 한국 국민에게 주는 국가장학금도 받았다.

문제는 성인이 된 남매가 2019년 법무부에 국적 보유 판정 신청을 하면서 드러났다. 국적법은 한국 국적 취득이나 보유 여부가 분명치 않은 자에 대해 법무부 심사 후 판정할 수 있다고 정한다. 법무부는 그해 10월 남매에게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남매는 불복해 소송을 냈다.

남매는 1심에서는 이겼으나 2심에서 패소했다. 1심은 남매가 사실상 ‘무국적’ 상태가 된 것과 다름없는데 이는 애초에 관할 행정기관 실수로 초래된 결과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다. ‘혼외자 출생신고’라는 이유로 남매의 출생신고가 말소된 후 관할 행정청이 부모에게 이를 수차례 알리고, ‘국적법상 인지 신고’(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를 자기 자녀라고 인정하는 신고)를 통한 한국 국적 취득 절차를 안내했으나 부모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남매 손을 들어주며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주민등록증 발급 등)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음을 전제로 한 행정행위가 반복적으로 이뤄진 결과 남매는 이를 신뢰했고, 별도의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채 성인이 됐다”며 “이 사건 판정을 통해 남매는 자신들이 나고 자란 한국에 체류할 자격부터 변경되는 등 평생 이어온 생활의 기초가 흔들리는 중대한 불이익을 입었다”고 밝혔다. 또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과실이 부모에게는 있으나 남매에게는 없다”고도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