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화적 기독교인”…전투적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 마침내 회심?

입력 2024-04-08 14:41 수정 2024-04-08 18:13
‘만들어진 신’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이자 전투적 무신론자로 알려진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가 최근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밝혔다. 하지만 그의 기독교 정체성은 신앙고백에 의한 거듭난 신자가 아니라 기독교 문화가 저변에 깔린 유럽인으로서의 ‘문화적 기독교인’이다. 그는 최근 영국 LBC(Leading Britain's Conversation)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나 자신을 문화적 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 나는 찬송과 성탄 캐럴을 좋아한다. (영국에서 사는 것은) 마치 기독교 분위기가 가득한 집에 있는 것 같다”며 “기독교와 이슬람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매번 기독교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L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문화적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는 리처드 도킨스. LBC X(옛트위터) 캡처

도킨스는 15~20년 전 황금기를 누렸던 신무신론의 가장 유명한 지지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크리스토퍼 히친스, 샘 해리스, 대니얼 데넷과 함께 이 운동의 4인방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영국에서 교회 출석률과 기독교인의 정체성이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기쁘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영국에서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이 홍보되는 것을 보고 “약간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문화적 기독교인”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CT)는 지난 5일(현지시간) ‘새로운 무신론, 마침내 기독교를 파괴하는 방법을 배우다(New Atheism Finally Learns How to Destroy Christianity)’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리고 “문화적 기독교인이란 도킨스에게는 무슬림이 아니라는 뚜렷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신이 누구인지(또는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국가적 관습에 따라 우리와 그들이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CT의 해당 기사는 편집장이자 미국 남침례회 윤리와종교자유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러셀 무어로 그는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나오는 악마의 변호인, 스크루테이프의 입장을 차용해 “무신론자들에게 교회를 실제로 파괴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면 도킨스의 문화적 기독교는 제안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기독교에 동조하는 것은 종종 효과가 있다”며 “이런 종류의 기독교는 ‘신은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기독교를 직접 공격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기독교를 허물어뜨린다.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망상에 불과한 하나님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러셀 무어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 편집장이자 남침례회 윤리와종교자유위원회 위원장.

무어 편집장은 “그것은 외적인 순응이 아니라 거듭남, 마음의 새로움,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요구하는 기독교 신앙을 없애버린다. 그런 다음 기독교의 껍질에 서식하며 껍질을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교화한다”며 “이러한 피와 흙으로 이루어진 종교는 결코 자신의 피와 흙을 소중히 여기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국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고 다른 사람의 흙을 훔치는 데까지 나아간다”고 분석했다.

그는 “도킨스의 문화적 기독교의 문제는 그가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기독교는 영국 국가(國歌·‘God save the Queen’으로 찬송가 ‘피난처 있으니’의 멜로디를 사용)와 마을 예배당, 촛불 캐럴에 관한 것이 아니다. 문화나 국가의 지렛대를 사용해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아닌데도 기독교인인 척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복음이 진짜가 아니라면 복음은 효과가 없다”고 강조했다.

무어 편집장은 “마귀는 공허한 문화적 기독교를 이용해 장기적으로 우리를 무신론자로 만들고 십자가를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화와 왕관, 교회당 또는 크리스마스트리로 대체하는 것임을 깨닫게 할 만큼 영리하다”고 경고했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거짓 선생들이 쾌락 권력 소속감 자아 등 사람들이 욕망하는 모든 것을 사용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은 부인하는”(딤후 3:5) 일종의 종교를 소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CT는 덧붙였다.

한편 미국 복음연합(TGC)도 호주의 멘톤침례교회 머레이 캠벨 목사의 글을 공유했다. 캠벨 목사는 “문화적 기독교란 하나님을 무시하고 배제하면서 하나님의 선과 혜택을 누리려는 욕망이다. 이는 모방적 무신론”이라며 “도킨스는 기독교의 열매를 감탄하고 먹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과일이 자라는 살아있는 나무의 현실은 여전히 부정한다”고 말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