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다. 소위 ‘꽌시(關系)’가 없으면 될 일도 안 될 수 있으나, 반대로 ‘꽌시’가 있으면 안 될 일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꽌시’이다.
이 ‘꽌시’에도 단계가 있다. 먼저 남과 다를 바 없는 단계로 단순히 새로 알게 된 관계를 ‘신펑요우(新朋友)’라 부른다. 단순히 이름과 얼굴만 아는 정도의 관계이다. 다음이 ‘하오펑요우(好朋友)’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친한 친구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여기까지는 중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꽌시’가 아니다.
중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꽌시’는 ‘라오펑요우(老朋友)’ 단계부터이다. 이 단계는 친구 관계의 정점으로서 스스럼없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소개하고 상대방이 허락받지 않고 자신의 물건을 써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관계이다. 중국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 사이에서 ‘꽌시를 맺었다’고 하려면 최소한 이 수준은 되어야 한다. ‘꽌시’의 최종 단계는 ‘슝띠(兄弟)’ 단계이다. 이 ‘슝띠’는 친구를 넘어 가족 또는 자신과 한 몸으로 여겨지는 단계이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특히 정부 등 관공서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래서 고위급 간부와 ‘꽌시’를 맺으면 일을 해결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누구와 ‘꽌시’를 맺고 있는지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이런 ‘꽌시 문화’가 중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맥(人脈)’이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방귀 좀 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맥 관리’를 해야 한다. 특히 정치권이나 정부기관, 사법기관에 인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인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고, 따라서 인맥 자체가 권위가 되기도 하고 돈이 되기도 하니 너도나도 인맥 만들기에 몰두한다.
이런 ‘인맥 문화’의 결정판이 ‘전관예우’라고 볼 수 있다. 정부나 사법기관에서 퇴직한 사람은 당연히 자신이 근무했던 기관에 두툼한 ‘인맥’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들은 자신의 ‘인맥’이 힘이 되고 돈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특히 권력이 센 기관일수록 더 큰 돈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인맥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받고 자신의 인맥을 판다. 그 인맥 덕분에 도저히 허가가 나오지 않을 일이 허가가 나오고, 도저히 실형을 피할 수 없는 범죄자가 무죄나 집행유예를 받는다.
또는 자신이 권력기관에 있을 때 업무상 관련 있는 업체에 취직한 후 인맥을 활용해 자신이 근무했던 기관을 상대로 로비하기도 한다. 일명 회전문 인사이다. 이렇듯 우리 시대의 중요한 가치인 ‘공정과 상식’은 전관의 인맥 앞에서 무참히 무너져 내린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여러 전관이 후보로 나섰다. 짧은 기간 동안 전관예우로 번 수십억원으로 국회의원까지 돼 보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전관예우를 통해 번 돈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국회의원을 그만두면 국회의원 동안 형성한 인맥을 활용해서 다시 전관예우로 돈을 버는 선순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