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 39명을 징계 처분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아베파를 엄벌하는 결단을 내렸지만 당 총재인 자신은 징계 대상에서 제외되며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교도통신과 현지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자민당 당기위원회는 4일 비자금 스캔들 관련 인사 처분을 위해 개최한 회의에서 아베파 의원 36명과 니카이파 의원 3명 총 39명에게 징계 처분을 내렸다.
시오노야 류 전 문부과학상과 세코 히로시게 전 자민당 참의원(상원) 간사장은 중징계로 분류되는 탈당 권고 처분을 받았다. 자민당 처분은 최고 중징계인 제명부터 탈당 권고, 당원 자격 정지, 선거 공천 제외, 국회·정부 직무 사임 권고, 당 직무 정지, 계고(戒告·경고), 당 규칙 준수 권고까지 8단계로 나뉜다.
탈당 권고에 응하면 향후 심사를 거쳐 복당할 수 있지만 응하지 않는다면 제명될 수 있다. 세코 전 간사장은 탈당 서류를 제출했다.
시오노야 전 문부과학상과 세코 전 간사장에 대한 탈당 권고는 이미 해산 선언한 아베파에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아베파 회장이었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22년 7월 총격으로 사망하자 각각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에서 아베파 수장으로 활동했다.
아베 전 총리는 2022년 4월 두 사람을 비롯한 중진들에게 법에 저촉되는 비자금 조성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한 뒤 그해 8월 조직적 비자금 조성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아베파 중진인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상, 니시무라 야스토시 전 경제산업상에게는 모두 1년 당원 자격 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아베파 사무총장을 지낸 다카기 쓰요시 전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6개월간 당원 자격이 정지됐다.
아베파 비자금 스캔들의 중심이었떤 마쓰노 히로카즈 전 관방장관과 하기우다 고이치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니카이파 중진인 다케다 료타 전 총무상은 1년간 당 직무 정지 징계를 받았다. 파벌 간부 이외 의원들은 정치자금 보고서 부실 기재액에 따라 징계 수위가 결정됐다.
2018∼2022년 정치자금 보고서 부실 기재액이 2천만엔(약 1억7761만원) 이상인 의원은 1년 당 직무 정지, 1천만엔(약 8880만원) 이상∼2천만엔 미만인 의원은 6개월 당 직무 정지, 500만엔(약 4440만원) 이상∼1천만엔 미만인 의원은 계고 처분을 각각 받았다.
보고서 부실 기재액이 500만엔을 넘지 않은 약 40명은 별도 처분을 받지 않았다. 대신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이 주의를 주기로 했다.
교도통신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2005년 우정 민영화 관련 법안에 반대했다는 등의 이유로 50여명에게 제명과 탈당 권고 징계를 내린 이후 이뤄진 최대 규모 처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기시다 총리와 차기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은 징계 대상에서 제외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2000년 이후 일본 정치 중심에 있던 최대 파벌의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이 누구의 지시로 시작됐는지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다”며 “당 수장의 책무를 포기하는 총리는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시다 총리에게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당내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며 “자민당 1강이 이어지며 긴장감도, 자정작용도 사라져버렸다”고 비판했다.
도쿄신문도 “기시다 총리가 처분 대상에서 제외된 것에 의문을 갖는 목소리가 뿌리 깊다. 당내에서도 불만이 크다”고 전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