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과학, 철학과 종교를 넘나드는 영성 깊은 언어로 한국교회 성도의 신앙 지평을 넓혀온 김기석(68) 청파교회 목사가 7일 은퇴를 앞두고 새 책 ‘고백의 언어들’(복있는사람)을 펴냈다. 43년간 목회하며 경험한, 또 지금껏 마주하는 하나님을 이야기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특히 기독교 사상가 함석헌의 시 ‘하나님’을 바탕으로 불가해한 하나님을 인간이 어떻게 바라봐야 하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강론한다.
지난 3일 경기도 과천 집필실에서 김 목사를 만나 책 집필 계기와 은퇴 소회를 들었다. 소속 교단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년(70세)보다 조기 은퇴한 그는 교회 목양실을 미리 비우고 일주일 전 이곳에 새 둥지를 틀었다. 책상과 책장이 전부인 정갈한 공간이다. 양쪽 벽에 놓인 책장엔 동·서양 고전과 신학서적, 시집 등이 빼곡했다.
책은 지난해 8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에서 강연한 원고를 정리한 것이다. 책 표지엔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대성당’이 실렸다. 두 개의 오른손이 맞닿은 형상이다. 김 목사는 “서로를 향해 기울어진 두 손에서 빚어낸 공간이 참 아늑하다”며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다가서는 손이야말로 교회의 본질임을 로댕이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번 책에서도 그는 시와 소설, 그림과 천문학 등 다양한 도구로 하나님의 신비를 풀어낸다.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으로 묘사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인용하면서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해보자”고, “사소한 일에 마음 끓이지 말자”고 권한다. 영화 ‘밀양’의 원작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선 신앙의 잣대로 상대의 고통을 무턱대고 평가하거나 ‘쉬운 용서’를 권하는 행태를 경계한다. 김 목사는 “용서하면 자유로워지는 건 맞지만 생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에게 ‘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라며 “이 세상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 정말 많다. 알 수 없는 것은 그저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 둬야 한다”고 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삶의 모호함을 고백하는 게 용기”라고 말한다. 찬반으로 가를 수 없는 복잡한 사안에서도 선명한 답을 원하는 게 인간 심리다. 하지만 이런 편 가르기의 세상에선 평화가 있을 공간이 없다. 현재 우리 사회가 유난히 어려워지는 것도 이 모호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고 봤다. 김 목사는 “삶의 모호성을 말하면 확신에 찬 이들은 ‘회색 인간’이자 ‘남의 편’으로 몰아세우곤 한다. 하지만 모호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나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여백이 생긴다”고 말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내 해답이 다른 사람에겐 답이 아닐 수 있다”며 “이를 인정해야 나와 생각이 다른 이를 변화시키고 싶은 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처럼 이번 저작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마음 씀’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말이 아닌 타자를 대하는 태도가 곧 내가 누구에게 속한 존재인지를 말해준다”는 김 목사는 “하나님과 깊이 접촉해야 타자(他者), 특히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고 강조했다.
목회 인생을 마무리하며 만감이 교차했다는 그는 ‘감사’와 ‘면구스러움’이란 단어로 은퇴 소감을 전했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저를 어떤 형태로든 사용했다는데 감격과 감사를 느끼지만 동시에 면구스럽기도 하다”며 “내 평생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예수를 한국교회가 본질에 어긋나게 소비하는 모습이 보여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아는 하나님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인식과 지평이 점차 넓어져 심화하고 확장하는 신앙을 경험하는 이들이 한국교회에 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간 “무계획이 곧 은퇴 계획”임을 밝혀온 김 목사에게 향후 활동을 묻자 미소와 함께 “백과사전처럼 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백과사전은 서가에 꽂혀있는 수동적 존재입니다. 누군가 궁금한 게 있어야 사용됩니다. 삶에 지친 이들이 슬며시 찾아오면 경험도 나눠주고 격려하는 역할이면 좋을 것 같네요.”
과천=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