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화 소장(이레문화연구소)
1. 열정은 좋은 거시여
열정(passion)은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귀중한 요소이다. ‘인간은 감정적 존재다’(homo emoticus)는 명제는 인간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만고의 진리다. 왜냐하면 감정(emotion)은 인간 안에 태어날 때부터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감정이 없다면 그야말로 목석(木石) 외에 더 무엇이라 할 것인가. 엄마 뱃속에서 태아는 이미 감정으로 교류하고 있으며 이성이 작용하기 이전에 먼저 본능적 감정이 작동해 반응한다. 감정은 곧 생존의 필수요건이라 하겠다.이 감정은 수많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감정은 이성과 연합해 온전한 인간을 형성한다. 감정에는 감각이 있어서 세상과 타자와 교감한다. 감각은 감정을 일으키는 기본 요인이다. 인간은 자신의 외부와 감각기관을 통해 끊임없이 교감하며 세상을 파악하고 인지한다. 자신의 정체성까지 감각을 통해 실현해 나가게 된다. 감각과 감정은 일차원적으로, 본능적으로 연결돼있다 하겠다. 감정 안에 소중한 영역의 한 부분이 열정이다. 열정은 긍정적 감정으로 한 인격체를 완성하는,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에로스와 문명>이라는 저술로 현대 문명의 밝음과 어두움을 비평한 마르쿠제(Marcuse)는 감정을 제대로 인정했다. 사랑이라는 뜻의 에로스(eros)가 현대에 와서 긍정과 부정, 양면성으로 어떻게 수용, 왜곡되었는지 밝히는 데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문명비판의 중심에는 바로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감정의 중요성은 한 인간에게 뿐 아니라, 사회와 거대문명을 판단하는데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현대와 같이 불확실성이 만연된 사회에서 현대인의 감정은 그 사회의 깊은 속을 파악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현대인의 불안, 공포, 좌절, 소외, 고독, 권태, 우울, 희망, 용기 등의 용어는 감정이 얼마나 인간 존재와 인간 상황(conditio humana)을 대변해 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이것이 현대인의 삶을 말해주는 좌표가 된다.
2. 열정에서 열광(熱狂)으로
열정은 여러 면에서 긍정적이다. 가령 청소년에게 미래의 꿈과 희망을 갖게 해주는 비전스쿨의 경우, 열정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열정은 내면의 뜨거운 열기로 설명한다. 경제 불안이나 인플레이션, 실직 사태 등이 사회적으로 나타나게 되면 한쪽에서는 용기를 잃지 말고 일어서자는 의식 운동이 일어난다. 여기에 동원되는 감정이 열정이다. 열정이 솟아나면 실의의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열정은 그런 면에서 창조적 감정임에 확실하다.열정은 그래서 종종 애국심과 연결된다. 21세기 들어 우리나라는 거대한 열정을 경험한 적이 있다. 2002년 월드컵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선전에는 그 배후에 민족적 응원 열기가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광장을 가득 채운 응원 인파는 가히 열정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응원 열기는 해외 토픽으로, 해외 다른 나라들이 모방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열정은 개인이나 작은 집단에서 사회나 나라에 이르기까지 거국적 감정연대를 가능케 할 힘이 있다. 대한민국 시민이 보여준 열정의 긍정적 사례라 하겠다(4·19 혁명, 70~80년대 시국운동, 5·18 민주화 운동 등은 구국의 열정이 이루어낸 민족적 거사이며, 개인적으로 이런 민족적 열정이 다시 되살아나 민족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어 가는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제 문제 삼고자 하는 주제는 열정에서 열광으로 돌변할 때이다. 열정의 긍정적 에너지가 어떤 상황이나 정치 권력에 의해 변질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때 열정의 고귀한 목표, 숭고한 이념은 사라지고 열정의 본질적 힘, 원시적 동력만 차용한다. 이는 열정의 악용 사례로서 열광(enthusiam)이라 부른다. 이 장치를 고도로 변형시킨 것이 ‘열광의 정치화’라 하겠다. 열광의 정치는 고대 세계사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로마 황제의 지배를 상징하는 열광주의가 시민을 사이비 종교적 우민정치로 몰아넣은 것이 그것이다. 이 경우 건강한 시민의 애국심은 황제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태양신, 달의 신으로 영웅화 하기에 이른다. 그 밑에서 고난 당하는 민초들의 아픔은 아랑곳 하지 않는 비인간적 구조가 굳어진다.
이를 모델로 한 후대의 사례가 나치당이 선택한 열광주의였다. 나치당은 독일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우민화 정책을 시도했다. 즉 건강한 시민 비판의식, 합리주의적 현실 판단을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열광에 빠지게 한 것이다. 황제 우상화를 모방해 히틀러 우상화로 변용, 조작하고 민족 구원의 메시아상이라고 선동했다. 나치당이 게르만 민족의 부흥과 재건을 가능케 할 정당이라 믿게 했던 것이다. 온갖 만국기를 거리에 내걸게 하고 야간에 횃불을 든 군중집회로 내몰게 하므로 끊임없는 세뇌정책을 감행했다.
열광주의 정책으로는 포퓰리즘이 대표적이었다. 주거와 직장을 해결한다는 사회복지를 확대하고 시민들이 자가용을 살 수 있는 체제를 만든다고 선전했으며(이 때 등장한 차가 Volkswagen 폴크스바겐, 즉 국민차였다) 또한 고속도로 공사를 통해 가시적 효과를 가져오게 했다. 직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북유럽이나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학교에서는 청소년들이 잼버리 야영을 할 수 있게 했다(그러나 이 야영은 조기 군사훈련의 목적을 갖고 있었다).
나치당이 벌인 포퓰리즘의 의도를 눈치 채지 못한 시민들은 나치당의 단맛 정책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나치당의 지지율은 급속도로 올라갔으며 히틀러는 급기야 수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독재자의 탄생은 합법적 선거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으니 잘못된 오판의 후유증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세계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에 휘말린 것이다. 이 역사는 오늘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3. 거부하라, 열광주의!
현대에도 세계 곳곳에서 열광주의는 국민을 미혹하고 있다. 악마의 유혹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정치화 되어가므로 건전한 시민정신을 왜곡시킨다. 주권자인 국민을 열광주의에 빠뜨려 정신을 혼미케 하고, 정권 쟁탈자들의 욕망에 먹이가 되게 한다. 현재 장기집권하는 이들이 벌이는 정권 공고화, 무기 개발, 영토 확장, 전쟁 도발 등의 배후에는 우민화 정책으로 인한 열광주의가 암약하고 있다.선거철을 맞아서도 열광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공약 남발로 유권자들을 현혹시키는 일은 없어져야겠다. 연구 개발(R&D)이나 예산이 뒷받침 되지 않는 공약이 얼마나 많은가. 예비타당성 조사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내던지는 개발 공약, 상대방 후보를 누르기 위한 ‘닥공’ 공약 등은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전형적 열광주의의 산물이다. 마치 ‘우리당을 찍어주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이다! ‘우리당을 찍어주면 행복열차 타고 가는 만족감을 누릴 것이다’는 현혹은 포퓰리즘에 편승하는 열광주의 기법이라 하겠다. 특정 정치인에게 무조건적 팬덤으로 열광할 것이 아니다. 특정 정당이나 지연, 학연, 혈연 등에 엮여 열광주의에 희생 돼서는 안되겠다. ‘무조건 무조건이야’는 현명한 시민들이 극복해야 할 덕목이라고 본다.
열광주의가 전국에 횡행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승자독식이라는 선거 속성상 그럴지라도(스스로 자정하기를 바라지만) 유권자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어떤 허무맹랑한 공약이 현명한 국민을 열광에 빠지게 하여 오판(誤判)하게 할지 깨어 있어야 한다. 이 세대에 떠다니는 정치 공약(空約)에 열광하지 말고 냉정하게 분별해 행동하도록 해야 한다.
말씀은 오늘도 강권하신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맹목적인 열광주의를 극복하려면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현명한 시민에 의한 공정 선거가 되어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가도록 해야겠다. “국가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가 주가 되게 하라”(A. 카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