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종교탄압에도 신앙 굳건한 미얀마 카친족 돕자

입력 2024-04-03 15:37 수정 2024-04-07 20:32
미얀마 카친족 아이들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 한국아세안친선협회(KAFA) 병원 건립 후원 요청 영상 캡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나서며 수많은 난민과 희생자가 발생한 소수 민족이 있다. 이들은 불교국가에 살며 숱한 종교 탄압도 받았지만, 매 주일이면 90%가 넘는 종족이 교회에 모이는 등 진정한 신자의 삶을 산다. 미얀마 최북단에 집단 거주 중인 카친족이다.

한국아세안친선협회(KAFA) 이사장 홍정길 목사는 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이들의 사연을 전하며 직접 마주한 카친족의 섬김을 들려줬다.

홍 목사는 “10여 년 전 카친족이 사는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몇몇 사람들이 가방을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것을 봤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가방은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모으는 가방이 아니라, 자신보다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나눠줄 여러 물품을 넣어서 다니는 가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카친족은 군부의 종교 탄압 등에도 굴하지 않고 다른 부족에 선교사도 많이 보냈다고 한다”며 “성경 속 사마리아인과 같은 성경이 말하는 삶을 실제로 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니 참으로 경이로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카친족의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KAFA에 따르면 1962년 첫 쿠데타 이후 2021년 2월 세 번째 발생한 쿠데타로 카친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1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난민 캠프만도 17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KAFA가 이들을 위한 현지 병원 건립 돕기에 나섰다.
미얀마 최북부에 위치한 카친족 집단 거주 지역 지도. 한국아세안친선협회(KAFA) 병원 건립 후원 요청 영상 캡처

미얀마 카친족 아이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모습. 한국아세안친선협회(KAFA) 병원 건립 후원 요청 영상 캡처

현재 카친침례교단은 고통받는 지역민에 고품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카친주 미찌나에 오는 7월 완공을 목표로 카친기독병원을 건립 중이다. 외부 설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최근 불안한 정세로 환율과 자재비가 급격히 올라 내부 설비와 의료기기 구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요 금액만 30억 원에 달한다.

이에 홍 목사가 원로목사로 있는 남서울은혜교회가 먼저 나서 지난주 모은 부활절 헌금을 카친기독병원 건립에 후원하기로 했다. 홍 목사는 “카친족의 높은 기독교 신자 비율과 굳건한 믿음은 복음 전파의 동반자로서 놀라운 증거로 다가왔다”며 “본 병원 건립사업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서 영적으로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하나님 섭리의 일부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홍정길 원로목사. 국민일보DB

지난 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백성기 KAFA 이사는 반세기 넘는 군부 세력의 탄압에도 신앙을 지켜나간 카친족의 모습은 한국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백 이사는 “기독인으로서 정말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카친족을 보며 아주 순수한 초대교회적 신앙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며 “카친족은 지금까지는 생존에 집중했다면, 최근 발생한 쿠데타를 통해 미얀마 지역의 복음화를 위한 첨병 역할을 해나가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세계 선교에 있어 한국교회의 중요한 동반자가 될 것이라 기대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좌부불교(소승불교)를 따르는 미얀마는 ‘불교의 성지’라고도 불릴 만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중요한 불교국가다. 하지만 1813년 아도니람 저드슨 미국 선교사가 미얀마에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한 이래 기독교인의 수가 점점 늘었다. 마침내 1834년 미얀마어로 완역한 신구약 성경도 나왔다. 그렇게 불교국가에 정착한 미얀마 기독교인들은 현재는 군부세력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며 불교도와도 연합한다.

백 이사는 “카친기독병원 건립 사역은 단지 건강과 치유에 관한 것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고난 속에서도 의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우리 형제, 자매들과 사랑 나누고 선한 그들의 싸움에 동참하는 일이다”며 “우리의 참여와 기부는 멀고 낯선 땅에 희망의 빛을 비추는, 이 시대 우리에 맡겨진 시대적 사명이라 생각한다. 이 여정에 꼭 동참해달라”고 말했다. 홍 목사도 “한국이 6·25전쟁 이후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세계 기독교인들이 보내온 도움 덕분이었다”며 “그들이 보내준 옷과 생활용품이 든 선물 상자가 우리를 살게 했듯, 이제 우리가 진 빚을 우리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 이들을 위해 갚을 때다. 병원 건립 사업에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포항공대 총장을 역임한 백성기 KAFA 이사가 지난 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미얀마 카친족의 신앙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임보혁 기자

마지막으로 카친기독병원 노통 말룻 박사는 KAFA에 병원 건립 후원을 요청하며 다음과 같이 전해왔다.
“병원 건립은 의학, 인도적 차원을 넘어 기독교 가치에 근거한 우리의 강력한 사명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모든 과정에서 주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믿으며, 믿음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단지 일이 아닌 주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