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or보기] KLPGA의 주인은 3043명의 회원이다

입력 2024-04-04 07:00
KLPGA는 지난달 29일 서울 강동구 길동 소재 자체 빌딩인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개소식에서 김정태 회장(가운데)를 비롯한 이사들이 케이크 커팅을 하고 있다. KLPGA

먼저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KLPGA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글로벌 투어를 지향하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가 새 집행부 구성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홍에 휩싸이고 있다. 논란은 이사회 의장인 김정태 회장이 이사회 표결로 통과된 임원들에 대해 선임을 하지 않으면서 촉발됐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과반 이상을 득표한 수석 부회장과 부회장을 과반 득표에 실패한 전무이사와 패키지로 묶어 동의 여부를 물어 ‘부동의’를 유도해 낸 뒤 임원 선임 건을 재논의키로 한 것이 발단이다.

KLPGA는 지난달 29일 새로 이사한 서울 강동구 소재 KLPGA 회관에서 새 집행부 구성을 위한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사회 주요 안건은 신임 집행부 구성을 위한 임원(수석 부회장, 부회장, 전무) 선출이었다.

KLPGA 정관 12조 2항은 ‘수석 부회장, 부회장, 전무이사는 선출된 이사 중에서 회장이 추천하고 이사회 동의를 얻어 회장이 선임한다’라고 돼 있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은 각 지위별 후보를 2명씩 복수로 추천했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는 제적위원 16명 중 김 회장 포함, 총 13명으로 성원 요건을 갖췄다. 다음 절차인 이사회 동의를 얻기 위해 표결에 들어갔다.

먼저 전무이사에 대한 표결이 있었다. 투표 직전에 A가 사퇴해 B의 단독 입후보였다. B는 전체 투표자 중 6표를 얻는 데 그쳐 이사회 동의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의장은 규정을 무시하고 의결을 강행했다.

다음 부회장과 수석 부회장 순으로 표결이 이어졌다. 그 결과 부회장은 C씨가 7표, D씨가 6표를 획득했다. 수석 부회장은 E가 7표, F가 6표를 얻었다. 이와 같이 이사회 동의를 얻은 의장은 C와 E를 규정대로 각각 의결했다.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회장이 규정과 관례를 무시하고 3명의 임원에 대한 선임 여부를 물은 것이다. 그러자 다수의 이사가 과반 득표에 실패한 전무이사 선임은 동의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사회 참석 G이사는 “전무이사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의 임원은 추천과 동의 절차가 규정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3인을 다시 패키지로 묶어 동의 여부를 묻는 건 규정에도 없다”라며 “각 직위별로 이미 선출된 직위자에 대한 동의 여부를 다시 표결에 부칠 수 없으므로 의장(회장)은 규정 요건을 충족한 2명의 임원에 대해 선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협회 김남진 사무총장은 “각 직위별로 3명이 다수표를 받았다. 당시 이사회 표결은 각 지위별 최종 후보를 정하는 과정이었다고 보면 된다”라며 “따라서 의장은 최종 후보인 3명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을 수 있다. 그런데 다수 이사가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재논의키로 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지난달 이사회는 본선 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예선이었다는 주장이다.

KLPGA는 회장에게 인사권을 주지 않는다. 물론 이사회 의결 사항을 거부할 거부 권한도 없다. 그럼에도 이번과 같은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뭘까.

시니어투어서 활동 중인 G회원은 “내년 3월 정기 총회까지가 임기인 김정태 회장의 연임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라며 “연임을 위해 자신의 친정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가 실패하자 나온 다분히 계산된 시나리오라는 게 대다수 회원의 생각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사실이면 심각한 문제다. 아니라면 조속히 사태를 정상화하면 된다. 해결 방안은 간단하다. 당선인 신분이나 다름없는 수석 부회장과 부회장에 대한 임명 절차를 빨리 진행해 집행부 공백 상태를 시급히 끊어내야 한다. 그리고 조만간 재소집할 이사회에서는 전무이사건만 재논의만 하면 된다.

모든 절차가 정상적으로 이행되더라도 이 사태를 촉발해 KLPGA의 명예를 실추시킨 당사자들은 누구든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결코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모든 조직은 그 규모를 떠나 규정과 절차를 중시한 민주적 시스템을 채택한다. 그걸 무시하면 오만이고 독선이다. 한 개인의 사심이 KLPGA를 피폐화시키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회원의 생각일 것이다.

KLPGA 주인은 3043명의 회원이다. 회장도 잠시 머물다가 가는 객(客)일 뿐이다. 그렇다면 서두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쉽게 찾아진다. KLPGA는 어떤 경우에도 ‘회원의, 회원에 의한, 회원을 위한 단체여야 한다’가 그 해답이 아닐까 싶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