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깨운 한국교회, 교회는 여성에 빚을 졌다”

입력 2024-04-01 15:02 수정 2024-04-01 15:53
양현표 총신대 신대원 교수가 1일 서울 용산구 후암교회에서 열린 교갱협 여성위 세미나에서 초기 한국교회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초기 한국교회 부흥을 이끌었던 전도부인을 조명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전도부인은 구한말 선교 개척기에 한국 여성들에게 선교사의 생각을 전해주며 선교사의 조력자 역할을 한 이들을 말한다. 세미나는 여성 목사 안수와 관련해 여성 사역자들의 요구가 거센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총회장 오정호 목사) 소속 단체인 교회갱신협의회(교갱협·대표회장 김성원 목사)가 주최했다.

교갱협 여성위원회(위원장 오영숙)는 1일 서울 용산구 후암교회에서 ‘초기 한국교회 여성의 위치와 역할’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양현표 총신대 신대원 교수는 “여성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교회는 없었을 것”이라며 “초기 교육받은 기독교 여성의 활동이 없었다면 복음전파부터 사회개혁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한 외국인 선교사도 여성이 많았다. 1884년부터 1945년까지 여성 선교사 수는 1529명이다. 전체 선교사의 63%에 달한다. 여성 선교사들은 당시 한국 여성을 무지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해 여성 교육에 매진했다. 여성을 위한 각종 교육기관과 성경공부반 성경학교가 이때 세워졌다.

교육을 통해 기독교 신여성이 등장한다. 첫 휘장 세례의 주인공 전삼덕 평양의 전도부인 김세지 보호여회·진명여학교 창설자 여메례 최초의 한국인 여교사 신마리아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3.1운동 당시 여학생들을 총지휘한 김마리아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복음전파와 사회개혁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구한말 조선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도부인의 활동이다. 전도부인은 집 밖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말씀을 설명하는 선생 역할을 했다. 성경을 비롯한 기독교 문헌을 판매하며 독립운동의 소식을 조선 땅 곳곳에 전달했다. 양 교수는 “전도부인은 세상 문물을 산간벽지까지 소개하는 문화매개자였다”며 “문맹 퇴치 운동, 농촌계몽 운동, 금주 금연 운동, 절제 운동, 애국 운동, 국채보상 운동 등도 이들의 업적”이라고 꼽았다.

당시 교회 안 목회 영역에서도 전도부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오늘날 일부 교단이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제한하는 등 사역의 한계를 두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양 교수는 “전도부인은 신앙의 전수자로서 가르치고 목양했다”며 “사역자가 없는 교회를 순회하며 설교를 했고 주일학교를 비롯해 교회 자치회 심지어 사경회까지 인도했다는 사실은 초기 한국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오늘날과 다르게 거의 무제한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영숙 교갱협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현재 교회 내 여성의 역할과 사역 개발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소망하며 세미나를 마련했다”고 행사 취지를 밝히는 한편 “최근 교단(예장합동) 내에서 여성 목사 안수를 주지 않으려고 ‘동역사’라는 상식에도 맞지 않는 직책을 만드는 것에 대해 우리 여성위원회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