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잊어버려서 미안해, 그때 모른 척하면 안 됐어.” 어린 시절 학교 폭력을 보고도 방관했던 명자은(류다인)이 백하린(장다아)에게 사과한다. 이걸 보던 성수지(김지연)는 “난 여전히 백하린이 이해 안 돼. 결국 가해자가 하는 변명일 뿐이잖아”라고 맞받아친다.
최근 전 회차가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은 친구들과 어른들의 무관심, 방관 속에 극단으로 치달은 학교 폭력의 면면을 드러내며 호평을 받았다. 가해자에 대한 연민을 차단하는 등의 탄탄한 스토리와 신예 배우들의 호연이 특히 주목받았다. 피라미드 게임의 전복을 주도한 전학생 성수지를 비롯해 게임의 주동자인 백하린, 학교 폭력의 방관자이자 피해자인 명자은 등 피라미드 게임이 이뤄지는 백연여고 2학년 5반 25명의 학생 각각이 캐릭터에 일체화한 모습을 보여주며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소연 감독은 “수지가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수지만 잘한다고 해서 될 작품이 아니었다. 그래서 작품을 두고 소통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대화가 잘 되는 배우를 중점에 두고 다른 배역들을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박 감독의 판단은 제대로 통했다.
‘피라미드 게임’으로 배우 데뷔를 한 장다아는 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의 언니로 작품 공개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그가 맡은 역할은 겉으로는 착한 척하지만, 실상은 친구들끼리 서로 배신하며 고통받게 하려고 피라미드 게임을 만든 주동자 백하린이었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다아는 “너무 선물 같은 기회여서 기분이 좋았지만 동시에 부담감이 책임감으로 다가왔다”며 “그만큼 제게 믿음을 주신 거로 생각해서 연기로서 답을 드리고 싶었다. 정말 치열하게, 집착하는 수준으로 백하린을 많이 공부하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으로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찍은 건 류다인도 있다. ‘일타스캔들’에서 장단지 역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류다인은 ‘피라미드 게임’에서 이 게임을 없앨 열쇠를 쥔 명자은을 연기했다. 류다인은 “다들 단지인 줄 몰랐다고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며 “자은이를 미련 없이 보내줄 만큼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작품이 좋은 소식을 들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두 사람은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연기하며 심적으로 힘들었다고도 털어놨다. 장다아가 연기한 백하린은 직접 물리적 폭력을 가하진 않지만, 친구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친구였던 자은에게는 심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인물이다. 장다아는 “교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을 제가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되게 불편했다”며 “특히 자은이에게 계속 가스라이팅을 하면서 주는 감정적 폭행들이 더 무섭고 악랄하다고 생각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린에게 신체적,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는 자은은 어린 시절 자신의 말실수로 하린이 괴롭힘을 당하는 걸 보면서도 방관했고, 이 때문에 하린에게 죄책감을 가진 인물이다. 류다인은 “(신체적 폭력은) 합을 맞추고 들어가서 괜찮았다. 저보다도 저를 때리는 배우들이 많이 울고 미안해 했다”며 “저였다면 (학폭을) 당하지 않았을 거다. 내가 방관자였다고 해도 그 친구에게 사죄해야지, 학폭은 합당하지 않다. 하지만 촬영하면서 방관도 죄라는 걸 느꼈고, 학폭에 대한 씁쓸함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메시지와 다른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 콘텐츠임에도 ‘피라미드 게임’을 접한 학생들이 이를 모방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박 감독은 “학폭이란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이걸 보여주기 위한 작품은 아니었다”며 “학교 폭력은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걸 표현하고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거였는데, 이런 소식을 접하고 너무 놀랐다. 마음이 안 좋다”고 털어놨다. 장다아 역시 “주변 성인들과 어른의 지도 편달이 중요한 것 같다. 작품의 메시지가 학생들에게 더 제대로 전달되는 길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피라미드 게임’을 통해 배우로서의 큰 한 발을 내디딘 장다아와 류다인에게 이 작품이 갖는 의미를 물었다. 장다아는 “모든 게 저한테는 첫 시작이라 ‘피라미드 게임’에서의 경험들이 앞으로의 모든 현장에서 밑바탕이 될 것 같다. 큰 가르침을 준 작품”이라며 “지금은 많은 걸 해보고 싶다. 다양한 시도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류다인은 “자은이도 ‘피라미드 게임’도 ‘군중 속에서 빛나는’ 캐릭터와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며 “앞으로는 류다인 나온다, 하면 ‘믿고 보지’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