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붐·탈석유 정책, 중동 진출 꿈꾸는 전문인 선교사에 기회”

입력 2024-03-31 15:59 수정 2024-03-31 17:41
중동지역한인선교협의회장 신영수 두바이한인제자교회 목사가 최근 서울 여의도의 국민일보에서 인터뷰를 가진 뒤 사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쿠웨이트의 한 공사 현장. 한밤중 인적 없는 곳에 주차한 한 버스 안으로 몇몇 한국인 건설 노동자가 모여들었다. 예배 인도를 맡은 사람만 성경을 읽기 위해 작은 손전등을 겨우 켤 수 있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참석자들은 “우리에게 예배할 교회를 달라”며 눈물로 기도했다.

교회는 물론이고 예배 공간조차 구하기 힘든 중동 지역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한국인 노동자들은 이슬람권 휴일인 금요일과 일요일 저녁에 건설 현장 막사와 식당, 휴게실, 버스 등에 삼삼오오 모여 예배를 드렸다. 한국의 건설기업 공사 현장 곳곳에 세워진 ‘현장교회’의 시작이다.

현장교회로 출발한 중동 지역 한인교회 50년 역사를 기록한 책이 최근 나왔다. 중동지역한인선교협의회(중선협) 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중동선교 한인교회사’(우리하나)다. 22개국 34개 한인교회의 흥망성쇠가 여러 사진 자료와 함께 상세히 기록됐다. 책 출간을 위해 방한한 중선협 회장 신영수 두바이한인제자교회 목사를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중선협은 74년 시작된 중동 한인교회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이번 책을 기획했다. 중동 선교 50주년을 맞는 올해 출간을 목표로 2022년 역사편찬위원회를 꾸린 중선협은 각국 한인교회의 자료를 일일이 수집해 1년 6개월만에 683쪽의 방대한 책을 완성했다. 신 목사는 “중동 지역 한인교회의 설립과 사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록을 남겨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만들어진 책”이라며 “한국교회에 중동 선교의 관심을 요청하기 위해 사역 현장을 생생히 구현하고자 특히 힘썼다”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야경 사진. 중앙에 삼성물산이 시공한 부르즈 칼리파가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책에는 중동 선교를 위해 고군분투한 한인교회의 사역이 시대와 지역별로 나눠 실렸다. 책에 따르면 한국 건설기업의 ‘중동 붐’을 타고 70~80년대에 세워진 현장교회는 150여곳에 이른다. 통상 ‘현대 팔루자교회’ 등 회사명에 현장이 있는 지명을 합쳐 교회 이름을 지었다. 회사로부터 예배공간을 얻지 못한 이들은 영상 40도를 웃도는 사막에서 그늘막 하나 없이 예배하기도 했다. 책에는 촛불 들고 사막에서 저녁 예배를 드리다 전갈에 물린 사례도 나온다.

90년대를 맞아 현지 정착 교민이 유입되면서 현장교회는 한인교회로 발전해 오늘에 이른다. 2000년대엔 국내 대형교회의 지원으로 세워진 교회도 속속 등장한다. 선교 형태도 변화를 겪는다. 이전엔 전단 배포 등 직접 전도를 주로 했다면 최근엔 의료시설 설립 등 지역사회 공익사업을 통해 복음을 전한다. 정교회와 가톨릭을 믿어 박해를 당하는 이라크 기독교 난민이나 시리아 난민을 돕는 등 구제 사역에도 열심이다.


한류 열풍과 산유국의 탈석유 및 산업군 다각화 움직임으로 중동 지역은 다시 한국인에게 ‘기회의 땅’이 됐다는 게 신 목사의 판단이다. 2006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정착해 현재 두바이한인제자교회와 한국어 교육기관인 두바이다니엘비전센터를 이끄는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중동 부국이 산업 다각화에 나서면서 전 세계 각 분야 전문가가 이곳에 모이고 있다”며 “한류의 영향으로 현지에선 한국인 전문가를 선호하고 있다. 기독 전문가가 현지에서 삶으로 복음을 보여줄 기회가 늘어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2년간의 중선협 회장 임기를 마치는 신 목사는 오는 6월 24~27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제23차 중선협헝가리선교대회’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회에는 중동 선교사와 가족을 포함해 300여명이 참석한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의 선교 방향을 놓고 고민하는 동시에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이라며 “항공료 절반은 개인이, 나머지는 중선협이 부담하는데 이를 위해 후원과 기도가 필요하다. 중동 선교에 관심 있는 이들의 지원을 기다린다”고 밝혔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