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민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민법상 법률혼주의를 채택한 한국에서 사실혼과 법률혼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민법하에서 한쪽 배우자의 사망으로 사실혼관계가 종료되면 생존한 사실혼 배우자에게는 상속권이 없고 재산분할청구권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헌재는 민법 1003조 1호 중 ‘배우자’ 부분에 대해 지난 28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에서 말하는 배우자는 법률혼 배우자만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A씨는 사실혼 배우자와 11년간 함께 살다가 2018년 사별했다.
상속순위를 규정한 민법 1003조에 따르면 배우자는 부모나 자녀(직계존·비속)와 같은 수준의 상속권을 갖고 법이 정한 비율만큼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 직계 존속이나 비속이 없으면 배우자가 단독 상속권을 갖는다.
그러나 해당 조항에서 말하는 배우자는 법률혼 배우자로 A씨와 같은 사실혼 배우자에겐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상속 대상에서 제외된 A씨는 2019년 8월 사실혼 배우자의 형제자매 등 법정상속인들을 상대로 재산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과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2014년에도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상속권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상속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객관적인 기준에 의하여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으로 인한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시키며,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3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속과 같은 법률관계에서는 사실혼을 법률혼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으므로 상속권 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헌재는 사실혼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통해 상속권을 가질 수 있고, 증여나 유증을 받는 방법으로 상속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점, 근로기준법·국민연금법 등에 근거한 급여를 받을 권리 등이 인정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상속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번 사건에도 기존 선례를 적용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선례와 달리 판단해야 할 사정변경이나 필요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상속권조항은 생존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상속권)을 침해하지 않고, 평등원칙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A씨는 배우자의 상속순위를 규정한 민법 1003조뿐만 아니라 이혼 시 부부의 재산분할청구권을 규정한 민법 839조 2호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A씨는 “사실혼이 일방의 사망으로 해소된 경우 생존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각하 처리했다. 각하란 청구 자체가 관련 법률에서 정하는 요건에 맞지 않아 부적법할 때 본안 판단을 내리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다.
재판관 6명은 “이혼과 같이 쌍방 생존 중 혼인이 해소된 경우의 재산분할 제도만 입법사항으로 되어 있다”며 “일방의 사망으로 사실혼이 끝난 경우 생존 배우자에게 재산분할청구권을 부여하는 규정을 두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입법자가 애당초 입법적 규율 자체를 하지 않았기에 헌법소원에서 허용되지 않는 진정입법부작위(입법자의 미 입법행위)를 다투는 것이므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법소원은 입법 활동의 결과인 법률의 헌법위반 여부를 다투는 제도로, 법률이 없는 부분에 관해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다만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적법한 청구로서 헌재가 판단을 내려야 하고, 사실혼 관계에서 일방이 사망한 경우 배우자의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남겼다.
세 재판관은 “현재의 법체계 및 재산분할 제도하에서는 사실혼 부부가 협력해 이룬 재산이 그 형성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상속인에게 모두 귀속되는 등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한다”며 “입법 형성에 관한 한계를 일탈해 생존 사실혼 배우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최다희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