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대북 제재 영구 해체하려는 목적”…북러 밀월 새 단계

입력 2024-03-31 06:52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연장을 거부한 것은 대북 제재를 영구적으로 해체하려는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과정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밀월이 깊어져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새로운 연합체가 탄생했다는 평가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 석좌와 엘런 김 선임 연구원은 29일(현지시간) CSIS 홈페이지에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유엔 대북 제재 체제를 약화하려는 조직적인 노력의 세 번째 단계”라고 설명했다.

차 석좌 등은 “러시아는 그동안 10건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동의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체제를 지지해 왔다”며 “이제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를 준수하지 않고 있고, 북한의 탄도 미사일 실험에 대응하는 새로운 안보리 결의를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거부권 행사로 대북제재위의 권한을 종료하고 기존 제재 체제의 ‘일몰 조항’을 요구함으로써 대북 제재 체제를 영구적으로 해체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에 착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차 석좌 등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북한 지원으로 인해 러시아가 북한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북한의 지원 대가로 위성, 핵잠수함, 장거리 탄도 미사일과 관련한 민감한 군사 기술을 제공해 비확산 규범을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의 (탄약) 재고를 회복하고, 러시아에 더 많은 탄약을 공급하기 위해 새로운 탄약에 대한 공동 생산 협정을 맺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푸틴(러시아 대통령)으로선 미국의 대우크라이나 추가 군사지원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시기에, 북러 간 호혜적 협력을 지속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결정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안보리에서 북한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가 패널이 없으면 유엔 회원국 입장에서는 현재의 제재 체제에 생긴 구멍을 메우고 이행을 감시할 제3자 기구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차 석좌 등은 “미국, 일본, 한국, 호주와 유사한 입장을 가진 다른 파트너 국가 등 핵심 국가들이 정보, (대량살상무기 등의) 확산 저지, 제재 정책 집행을 위한 입법 등에서 공조해야 한다”며 “주요 7개국(G7)과 호주, 한국, 스페인 등이 적극적으로 정책 공조를 하면 완벽하진 않지만 효과적인 대체제를 만들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북러 협력을 보여주는 유엔 패널 보고서를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얼마나 북한에 노다지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대북제재 감시망 해체는 대북 압박 완화에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대북 제재위 전문가 패널을 지낸 휴 그리피스는 “러시아는 핵 비확산과 탄도 미사일 이행 규범에 관한 국제적 스포일러에서 무법 국가로 전락했다”며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이제 어떻게든 괜찮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