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회고록보다 더한 5.18 조사보고서’…5월·시민사회 단체 반발

입력 2024-03-28 10:18 수정 2024-03-28 10:24

광주지역 5월 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5·18 조사보고서’ 폐기를 잇달아 촉구하고 나섰다. 가해자 위주로 작성한 조사보고서가 왜곡세력에 빌미를 줄 우려가 크고 핵심쟁점에 대한 폄훼를 부추긴다며 반발하고 있다.

광주·전남지역 19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한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는 27일 5·18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4년여의 조사 기간을 거쳐 지난달 공개한 조사보고서가 “오월 정신을 능멸했다”며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5·18 진상조사위가 31일까지 개별보고서 수정 의견을 제시하면 종합보고서에 반영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는 불가능한 구조와 조건”이라며 “종합보고서는 각 개별보고서 요약 보고서일 뿐 개별보고서 기록을 근본적으로 넘어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설사 수정 의견이 반영돼도 개별보고서와 조사진술 자료 자체는 폐기되지 않는다”며 “진상조사위는 당장 종합보고서 초안을 추가 공개하고 총선 출마자 등 정치인들은 개별 보고서 폐기를 위한 긴급 법안처리를 약속하라”고 덧붙였다.

공법단체인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 5월 단체들은 “개별보고서 514쪽 중 가장 방대한 분량을 차지하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작전에 참여한 군과 시위진압에 투입된 경찰의 사망·상해 등에 관한 피해’ 조사보고서는 반드시 폐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아직 사죄도 하지 않는 사실상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양재혁 유족회장은 “5·18 왜곡에 굶주린 극우 인사들에게 개별보고서가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지 불 보듯 하다”며 “5·18 직후인 1980년대와 1990년대 당시 유족회가 장기간에 걸쳐 직접 작성한 조사자료를 토대로 민간조사위를 다시 꾸리고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5월 단체들은 발포명령자, 암매장, 북한군 개입설 등 5·18 핵심의혹을 규명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조사위가 오히려 가해자 측 피해를 강조한 조사보고서를 작성·발표한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곧 공동 성명서와 함께 5·18 진상조사위를 방문해 양비론적 시각이 담긴 ‘졸속 조사보고서’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기로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518 기념재단 등도 지난 25일 5·18 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5·18조사위보고서 평가회’를 갖고 당시 군과 시위진압 경찰관 사망 상해 등에 관한 피해조사 등 가해자 위주 보고서를 마땅히 폐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과거 전두환 회고록 관련 재판에서 진상 규명된 판결문보다 오히려 후퇴한 내용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깜깜이 조사와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은 조사보고서는 ‘5·18 왜곡의 뿌리’가 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수정·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년 1월 초 국가 차원 최초의 5·18 진상규명을 위해 공식 출범한 5·18 진상조사위는 지난달과 이달 초 ‘성폭행’ 등 2개 과제를 제외한 직권조사 과제별 조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어 이달 말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할 종합보고서에 담길 권고사항 작성을 위해 광주지역 5월 단체와 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