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상임이사국인 미국 기권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개전 이후 처음 채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터뜨리며 고위 대표단 방미를 일방적으로 취소했고, 미국은 실망감을 표했다.
동맹국인 미국과 이스라엘이 국제무대에서 공개적으로 갈등을 표출, 양국 정상 간 관계가 봉합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치닫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보리는 25일(현지시간) 공식회의를 열어 즉각 휴전 및 인질 석방 요구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사국 15개국 중 미국을 제외한 14개국이 찬성했다. 안보리가 가자지구 사태와 관련해 즉각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한 건 처음이다. 이번 결의안은 한국을 포함한 선출직 비상임 이사국 10개국(E10)이 공동으로 제안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결의안이 채택되자 회의장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하마스의 대학살이 이번 전쟁을 시작한 것”이라며 “안보리가 지난해 10월 7일 벌어진 대학살을 비난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성명을 통해 “인질 석방 조건이 없는 휴전 결의안에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건 그간의 (미국) 입장과 배치된다”며 “미국의 기권은 인질을 풀어주지 않고도 휴전이 허용된다는 희망을 하마스에 심어줬다”고 밝혔다. 미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도 이날 미국에 대표단을 보내기로 한 결정을 취소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조 바이든 대통령 요청에 따라 가자지구 라파 지역 지상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자히 하네그비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포함된 고위급 대표단을 미국으로 파견하기로 했었다.
백악관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스라엘의 방미단 취소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 이번 결의는 휴전을 강제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구속력 없는 결의’”라며 “하마스를 추적하는 이스라엘 능력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기권은) 정책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이스라엘 총리실이 그럴 필요가 없는 시점에 (미국과 이스라엘 간에) 이견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려 한다”고 지적했다.
커비 보좌관은 또 “라파에 150만 명의 사람이 피난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상 공격은 옳은 행동 수순으로 보지 않는다. 대규모 지상 작전은 실수라는 우리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라파에서 임박한 지상전을 준비하고 있는 조짐을 보지 못했다. 수일 내에 일어날 것으로 감지되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도 이스라엘의 방미 취소 결정에 “놀랍고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사태에 대해 “가자 지구 공격 자제 요청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불만이 바이든 행정부 내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 관계를 더욱 긴장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보수 매체 ‘이스라엘 하욤’과 인터뷰에서 “당신들은 전쟁을 끝내야 한다. 이스라엘은 곤란에 처했다”며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신뢰를 잃고 있어서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이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자의 건물들을 폭격하는 사진들을 보며 ‘너무나 끔찍한 초상’이라고 이야기했다”며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끔찍한 광경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때문에 공격이 발생한 것”이라며 “그들(하마스)은 바이든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바이든은 두 문장을 이어 말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