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펩시콜라의 흑막…사탕수수 농장 노동 착취

입력 2024-03-25 15:22 수정 2024-03-25 15:59

인도 서남부 마하쉬트라 지역은 고온다습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으로 예로부터 농업지대였다. 쌀 농사 위주였던 이곳은 2000년대 들어 엄청난 규모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변모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등 다국적 음료회사가 손을 뻗으면서, 사탕수수에서 추출되는 설탕의 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인 아르차나 아쇼크 차우레씨는 14살때 사탕수수 노동자였던 남편에게 ‘강제’ 시집을 온 이후 30년 넘게 매일 10시간 이상 일해왔다. 사계절 여름인 이곳은 하루도 쉬지 않고 사탕수수가 자라고 베어지고 또 자라길 반복한다.

차우레씨가 이렇게 일하고 받은 돈은 지금까지 전무하다. 이유는 남편이 농장주에게 진 빚 때문이다. 일하고 받는 두 사람의 일당이 매일 이 빚의 이자로 농장주에게 지급되는 식이다. 차우레씨도 남편 집안에 빚을 진 부모 때문에 강제 결혼을 당했다.

이곳에서 차우레씨와 같은 수천명의 여성이 이처럼 강제 결혼, 임금 착취, 불법 노동을 당하고 있다. 심지어 결혼한 여성들 다수는 자궁적출 수술까지 받아야 한다. 결혼한 부부가 매일 내야 하는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데 자녀를 낳아 돌보는 시간동안 한 사람 몫의 노동력이 사라지니 영구 불임을 위해 자궁까지 몸에서 들어내는 것이다.

농장주들은 자궁적출 수술마저 노동자들을 옳아매는 ‘덫’으로 사용한다. 수술비를 엄청난 이자를 붙여 해당 부부에게 대여해준 뒤, 원금과 이자를 강제노동으로 갚으라는 식이다. 빚이 ‘무임 노동’을 낳고, 또 더 큰 빚을 낳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와 풀러재단 탐사보도팀은 24일(현지시간) 이 지역의 강제노동·인권유린 실태를 파헤친 르포기사를 통해 “마하쉬트라 지역의 사탕수수를 대규모 도매하는 코카콜라, 펩시콜라 등의 다국적 기업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방치해왔다”고 폭로했다. 두 회사는 마하쉬트라 지역에 엄청난 크기의 설탕 생산 공장을 다수 가동하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2019년 작성된 코카콜라 내부 보고서에는 이 지역의 강제노동과 임금 착취를 시정토록 농장주들에게 요구했다고 기록돼 있지만, 어떠한 강제적 규제나 조치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마하쉬트라 지역의 불법 노동 현실은 현지 지방정부조차 파악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줄기는커녕 더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현지당국 조사에 따르면, 마하쉬트라 사탕수수 지대에서에 일하는 여성 노동자는 8만2000명에 이르며, 이들은 5명 중 1명 꼴로 자궁적출 수술을 당한 상태다.

노동 착취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다국적 기업들의 현실 방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주기적으로 파견되는 해당기업 감시단은 아무 권한 없이 실태만 살펴볼 뿐이며, 기업과 농장주들의 사탕수수 거래 규모는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소비자 윤리강령엔 ‘어떤 형태의 강제노동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쓰여져 있지만, 이들 기업의 음료는 아마도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임금착취 구조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