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단의 폭력으로 전국적인 유혈사태가 벌어진 아이티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현지에 고립되거나 연락이 닿질 않아 후원 교회와 단체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다. 아이티에 선교사를 파송한 단체들은 선교사들의 안전과 현지 안정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박창환 아이티 슬링스톤신학교 학장은 현지에 남기로 결정하면서 현재 고립된 상태다.
23일(현지시간) 후원 교회와 이사회에 편지를 보낸 박 선교사는 “이미 며칠 전 미국 정부가 보낸 마지막 구조 헬리콥터가 떠나 완전히 고립됐다”면서 “저는 그 헬리콥터를 탈 수 없었고 결국 포기했다”고 전했다.
그의 발목을 잡은 건 학생들이었다.
박 선교사는 “총소리가 들리는데도 목회자와 학생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나와 말씀을 배우고 있다”면서 “이들을 보면서 사명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신학교가 있는 지역까지 갱들이 들어온 뒤에는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 같다”면서 “신학교 식구들, 학생들과 서로 의지하는 이 시간이 오히려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이 마음을 선하게 받아주실 걸 믿는다”고 썼다.
박 선교사는 미안한 마음에 가족에게도 연락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도망갈 수 없었다”면서 “이들이 제게 가족이고 친구이며 형제같이 돼 버렸다. 집에 있는 가족에게 정말 미안하다. 주님 안에서 딜레마에 빠졌다”며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대부분의 아이티 선교사들은 외부와 소통이 중단됐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한 관계자는 25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현지와 직접 소통하는 게 어렵지만 여전히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현지에 남은 선교사들이 있다. 정확한 수를 파악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에 앞서 지난 14일 커윈 델리캣 아이티성공회 상임위원회 사무총장은 미국의 기독교 매체 TLC와 인터뷰에서 “현재 아이티 인터넷은 물론 전화 통화도 어렵다. 아이티 역사상 최악의 시기”라면서 “기도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갱단에게 선교사와 가톨릭 사제가 납치 대상 1순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초 라틴아메리카 정의·평화 교회 네트워크가 국제 평화군의 긴급한 개입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표한 이유다. 이들은 당시 “국제 사회가 아이티 국민의 고통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며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했다.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이사장 오정현 목사)이 아이티에 설립한 아이티직업학교는 현재 연락이 끊겼다.
김철훈 한교봉 사무총장은 “현지에 있는 최상민 이사장과 연락이 닿질 않아 현지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답답하다”면서 “조속히 현지 소식을 듣고 향후 대책을 마련하려 한다”고 밝혔다.
미국에 본부를 둔 아이티선교회(회장 장기수 목사)도 현지 사정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기수 목사는 “현지에서 가장 오래 사역하셨던 탁형구 선교사님을 비롯해 몇 분의 한국인 선교사가 남은 거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면서 “집 밖에 나가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 선교사님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할 뿐”이라고 했다.
장창일 기자 김수연 박윤서 서지영 최하은 인턴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