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황제’라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2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2세.
이탈리아 언론은 이날 폴리니의 가족들이 밀라노의 자택에서 임종을 지켰다고 전했다. 생전 고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은 “폴리니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이자 50년 넘게 극장의 예술적 삶에서 근본적인 기준이 된 인물”이라며 추모했다. 고인의 장례식은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유명 건축가 지노 폴리니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 재학중이던 18세에 세계적 권위의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당시 심사위원 만장일치 우승이었으며, 심사위원장이었던 거장 피아니스트 아트루르 루빈스타인이 “저 소년이 기교적으로 우리 심사위원들보다 더 잘 친다”고 극찬한 것은 유명하다.
1960년 쇼팽 콩쿠르 이후 뜨거운 주목을 받았지만, 고인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녹음한 이후 8년간 공식적인 연주 활동을 하지 않은 채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미켈란젤리와 루빈스타인을 사사하며 내적 성숙의 시간을 가졌다. 1968년 복귀한 그는 독보적인 천재성과 엄격한 스타일로 다시 한번 전 세계 음악계를 열광시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악보의 X선 사진과 같은 연주”라고 평가할 정도로 그는 악보의 모든 음을 극도로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쇼팽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쇼팽 음악에 가장 정통한 연주자로 평가받는 동시에 베토벤, 슈만에 이어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등까지 넓은 연주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그는 고령에도 왕성한 연주 활동을 펼쳤다. 2020년 3월에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 앨범을 내기도 했다. 이런 활약을 토대로 예술계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비롯해 그래미 어워즈, 디아파종상 등 저명한 음악상을 다수 받았다.
다만 고인은 아쉽게도 한국과 인연이 없었다. 2022년과 2023년 내한 리사이틀을 열 예정이었지만 두 번 모두 건강 문제로 취소했다. 당시 한국 관객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는 “한국 공연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건강상 문제로 여행을 할 수 없기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른 시일 내에 한국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지만 끝내 국내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