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러시아 테러 사전 경고했다”…러 “명백한 협박”

입력 2024-03-23 14:37 수정 2024-03-23 14:40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서쪽 외곽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상공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공연장에서 테러범들의 총격으로 최소 62명이 숨지고 145명이 다친 가운데, 미국이 러시아 당국에 사전에 대형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이날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이 모스크바 총격 테러 사건 이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왓슨 대변인은 “미국 정부는 이달 초 모스크바에서 콘서트장을 포함해 대형 모임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리스트 공격 계획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며 “이에 따라 미 국무부는 러시아 내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주의보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정부는 ‘경고 의무’에 관한 정책에 따라 러시아 당국에도 해당 정보를 공유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미 정부 당국자도 “우리는 러시아에 적절하게 경고했다”고 매체에 전했다.

모스크바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대규모 총격 테러 이후 러시아 군이 인근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도 복수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이달 초 미 대사관의 경고가 이번 테러 공격과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미국 대사관은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극단주의자들이 콘서트를 포함해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모임을 대상으로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고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미 대사관은 러시아 내 미국인들에게 48시간 내 공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대피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백악관은 앞서 미 대사관이 경고한 공격 계획이 이번 테러와 연관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7일의 경보가 이번 사건을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라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우리가 사전에 알았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테러범들의 방화로 불에 탄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도심 북서부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 최소 4명의 무장 괴한들이 들어와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는 이같은 미국 정부의 테러 공격 경고에 ‘러시아를 불안하게 만들기 위한 협박’이라고 비판해왔다.

NY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미국의 경고에 대해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명백한 협박”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22일 벌어진 대형 테러에 대해서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또 러시아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면 보복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사건 발생 직후 “테러범들이 키이우 정권의 테러리스트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그들 모두는 무자비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연루설’에 “관련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도심 북서부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 최소 4명의 무장 괴한들이 들어와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2일 모스크바 도심 북서부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 최소 4명의 무장 괴한들이 들어와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후 대형 화재가 발생해 최소 62명이 숨지고 145명 이상이 다쳤다. 테러범들은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고, 불을 질러 공연장 지붕이 무너지기도 했다.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텔레그램을 통해 “전투원들이 모스크바 외곽에서 열린 대형 모임을 공격했다”며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도 이번 공격이 IS의 소행이라는 것을 확인할 정보를 갖고 있다며 공격 배후로 이들을 지목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