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시달리는 중국 청년들이 경제 불황에 대한 불만을 복권으로 진정시키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1일 보도했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중국 재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누적 복권 판매액은 5800억위안(약 106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에 달했다.
현지 시장조사업체 몹데이터는 구매자의 80% 이상이 18~34세라고 밝혔다. 2020년까지만 해도 절반을 조금 넘었던 젊은층 비중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중국 청년들이 복권에 열광하는 현상은 심각한 청년 실업률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6월 21.3%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이후 7월 통계부터는 발표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당시 블룸버그는 “청년들의 5분의 1이 실직 중인 것은 사회 안정 유지에 집착하는 집권 공산당으로서는 골치 아픈 통계”라며 “이번 발표 중단 결정은 시기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고 분석했다.
이후 중국 당국은 중·고교 대학 재학생을 제외한 실제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실업률 통계를 지난 1월부터 발표하기 시작했다. 바뀐 통계방식으로 집계되는 청년 실업률은 14~15% 수준을 나타내지만, 통계가 반영하지 못한 실업자는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심각한 청년 실업률에 중국에선 ‘전업자녀(全職兒女)’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까지 생겼다.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부모 집의 청소와 식사 등을 전담하고 부모에게 월급을 받는 청년을 말한다.
미국 연구소 유라시아그룹의 도미니크 치우 수석 애널리스트는 “경제 환경과 취업 시장이 빡빡해질수록, 사람들은 단순한 부와 성공을 위해 복권과 같은 일확천금에 의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힙’ 해지는 중국 복권 가게
젊은 층의 발걸음이 몰리면서 복권 판매점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복권방들은 예전의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소위 힙(hip·새롭고 개성이 강하다는 뜻)한 분위기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최신 유행의 카페처럼 세련된 복권 가게들도 늘고 있다.
블룸버그는 “충칭의 한 복권 가게는 ‘우리는 여전히 꿈을 가져야 합니다. 언제가 그 꿈이 실현될지 누가 알겠어요’라는 문구를 내세우며 청년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남서부 윈난성의 성도 쿤밍에는 ‘로또 커피숍’도 등장했다. 커피숍 벽면엔 “행운이 있는 커피 한 잔”이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은 커피를 한 잔 주문할 때마다 긁어서 확인하는 즉석 복권 한 장을 공짜로 받는다.
복권 판매점이 단순히 복권만 사는 장소가 아니라, 청년들이 복권 구매와 함께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100위안(약 1만8000원)에 당첨된 뒤 매일 30위안어치 복권을 산다는 베이징 중국전매대학 영화학과 신입생 우쩌하오(18)씨는 “지금은 뭘 해도 돈 벌기가 힘들다”며 “근로소득으로 부자가 될 확률보다, 복권으로 부자 될 확률이 훨씬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도박 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해온 중국 당국도 예외적으로 청년들의 ‘복권 열풍’을 용인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 복권 인기를 조명한 기사가 중국 당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매체에 실린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공산당은 1949년 집권했을 때 대부분의 도박을 불법화했다. 오랜 기간 도박과 ‘불편한 관계’를 맺어온 공산당은 1980년대 복권 자금이 복지에 쓰일 수 있다며 복권의 출시를 허용했다.
현 상황에서 당국이 복권마저 단속할 경우 공산당 지도부를 향한 청년층 분노가 사회 안정의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2년 말 전국적인 코로나19 봉쇄 항의 시위를 주도한 것도 젊은 층이었다. 당시 이례적으로 시진핑 국가주석 하야 구호까지 등장했었다.
최다희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