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안받으니 010으로…발신번호 조작 ‘다국적’ 일당 검거

입력 2024-03-20 17:47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 관계자가 20일 서울동부지검에서 보이스피싱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 운영조직으로부터 압수한 중계기와 라우터, 휴대전화 유심 등 범행 도구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이스피싱 조직과 공모해 발신번호를 조작한 다국적 일당 수십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사람들이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의 전화를 잘 받지 않는 점에 착안해 발신번호를 ‘010’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50억원 이상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수민)은 중국·태국·남아프리카공화국·아이티 등 외국인으로 구성된 보이스피싱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 운영조직을 검거했다고 20일 밝혔다. 검찰은 간부급인 수당지급책과 부품보관소 관리책, 환전책 등 역대 최대 규모인 21명을 범죄단체가입·활동,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이달까지 일명 ‘골드(GOLD)’라 불리는 중국인 조선족 총책의 지시를 받아 보이스피싱에 사용될 전화번호를 조작했다. 중국 등 해외에 있는 콜센터에서 건 전화를 국내에서 건 것처럼 꾸미는 역할이었다. 조직은 콜센터 조직에 매월 약 500회선을 판매하고 1회선당 약 90만원을 받았다. 해당 조직이 사용한 회선을 역추적해 밝혀낸 보이스피싱 피해자만 170명, 피해금은 54억원에 달한다.

이 조직은 중국 옌지에 거점을 두고 초반에는 조선족을 조직원으로 모집했지만, 수사망이 좁혀오자 방향을 바꿨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 ‘숙소 제공 고액 아르바이트’라고 속여 국내 불법체류자와 난민신청자를 범행에 끌어들였다. 업무와 가담 기간에 따라 매주 50만~100만원의 수당을 지급했다.

합수단은 서울 관악구와 금천구 일대에 일반 원룸으로 위장한 중계소 11곳과 부품보관소 4곳을 적발했다. 이후 발신번호 변작중계기 1694대(784회선)와 휴대전화 유심 8083개 등을 현장에서 압수했다. 변작중계기는 여러 개의 유심칩을 장착해 휴대전화 발신번호를 조작할 수 있는 장치다. 주로 보이스피싱 조직이 해외에서 온 전화를 국내에서 온 것처럼 속이는 데 사용된다.

김수민 합수단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공공기관에선 휴대폰을 이용해 전화하지 않는다”며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도 한 번 더 확인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