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청소년의 비만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20%에 이르고 있다. 비만 문제는 식이, 운동량 부족, 게임 과몰입 등의 요인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서, 또래 관계 문제, 부모 자녀 관계 등의 다양한 요인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중학교 1학년 남학생 P는 어려서부터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친구들은 순하고 약해 보이는 P를 놀리고 괴롭히며 따돌리기 시작했다. 부모는 친구들에게 상처받을까 봐 학교 이외에는 친구들과의 접촉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자유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게 하였다. P는 차츰 친구들을 스스로 피하게 되었고 집에서 혼자 지내며 컴퓨터 게임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욕구 불만 때문인지 먹는 것에 집착했다.
체중은 갈수록 늘어서 고도 비만에 이르렀다. 이젠 외모로 인해 놀림과 괴롭힘이 더욱 심해졌다. 고립도 심해져 갔다. 사춘기가 되어가자 P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느껴 사귀어보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부모를 원망하고 반항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간섭과 과잉보호로 자신이 겁이 많고 자신감이 없어졌고, 어릴 적에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이러면서 비만도 심해지고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화를 내고 부모님과 다툼이 심해져 갔다.
물론 부모님의 양육 태도는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P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친구 관계든 비만의 문제든 해결되지 않는다. P가 부모의 과잉보호 때문에 친구를 사귈 수 없다’ ‘비만 때문에 친구를 사귈 수 없다’라는 식의 인과론에 빠져 버린다면 생각에 갇혀 행동이 변화할 수 없다. 대신 ‘우리 부모는 과잉보호했다. 그리고 나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 ‘나는 비만이다. 그리고 나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라고 병렬식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행동을 할 수 있다.
부모를 탓하고, 비만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를 갖기 원하는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과잉보호와 비만은 P라는 사람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다. 이를 체험적으로 느껴보기 위해 부착형 메모지에 ‘과잉보호’ ‘비만’이라고 쓰고 몸에 붙이고 거울을 보도록 했다. 커다란 몸에 메모지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다. 무엇인가를 탓하고 원망하는 생각에 빠지기보다 행동하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되어 갔다.
또 P와 부모님을 함께 상담하면서 부모님은 자신들이 또래로부터 느끼는 괴로움에서 아들을 보호해 주고자 했던 행동이 오히려 P를 약하게 만들고, P의 체중을 증가시키고 아들을 더 외롭게 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또 P는 부모님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혼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게끔 하려면, P는 독립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내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P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반 친구가 다니는 복싱 체육관에 등록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이 목표를 위한 세부 단계로 체육관에 가는 대중교통 경로를 살펴보고, 무료체험 날짜를 전화해서 알아보고 체육관 투어 계획을 세워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체육관에 스스로 등록해 다니기 시작했다. 독립적인 행동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생긴 P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였다. 부모도 이런 P의 행동을 격려하며, 친구가 집에 왔을 때 환영해 주는 역할만을 하기로 하였다. P는 차츰 또래 관계가 나아졌을 뿐 아니라 살도 조금씩 빠지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나아졌다. 당연히 식욕도 조절되어 갔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