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연 끊고 숨어 지내”…황의조 피해자의 호소

입력 2024-03-20 00:16
축구선수 황의조. 뉴시스

축구선수 황의조가 촬영한 사생활 영상을 유포하고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형수 이모씨에게 법원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같은 판결에 영상 속 피해 여성 측은 “판결에는 피해자의 존재가 아예 고려되지 않았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재판장 박준석)는 성폭력처벌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형수 이모(33)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는 지난해 6월 황씨의 전 연인을 사칭해 불법촬영 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 유포하고, 황씨를 협박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황의조의 유명세로 불법 촬영 영상이 무분별하게 퍼진 점을 지적하면서도 영상 속 피해자의 신상이 특정되기 어려운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황의조가 국가대표 축구선수이므로 유명세로 인해 불법 영상물이 무분별하게 퍼질 것임을 알았음에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며 “끝내 각종 SNS를 통해 피해자들의 성 관련 영상이 국내외로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영상 및 사진만으로는 황의조를 제외한 나머지 피해자들의 신상을 특정하기 어렵다”며 “피해자들 중 황의조와 합의해 피고인의 선처를 구하는 점을 고려해 양형을 결정했다”고 했다.

“판결문에 피해자 없어…특정 어렵다는 판단도 납득 못해”

그러나 피해자 측은 이같은 판결에 대해 “국가대표 선수와 그 가족 간의 갈등에서 빚어진 범죄에서 피고인은 영상 속 피해자의 존재는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고 19일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 A씨 측 법률대리인 이은의 변호사는 “재판부는 황의조가 국가대표라 더 큰 피해를 봤다고 하는데, 이에 따라 영상 속 피해자가 입은 피해는 더욱 막대했다”며 “이런 점들이 고려되지 않은 부족한 판결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또 “양형 근거에 피해자 이야기가 아예 없다”며 “황의조가 피해자에게 가한 2차 가해 이외에도 피고인 측에 의한 2차 가해도 적지 않다. 피해자는 엄벌을 탄원하고 피고인의 공탁을 거절했다”고 했다. 앞서 형수 이씨는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13일 오후 법원에 2000만원의 형사 공탁금을 기습적으로 냈다.

피해자 측은 재판부가 영상 속 피해자 특정이 어렵다고 판단한 점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황씨는 지난해 11월 입장문을 발표하며 영상 속 여성을 추정할 수 있는 신상 정보를 일부 언급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말도 맞는 말이 아니다. 피해자나 피고인 주변에 피해자를 아는 사람이 있지 않으냐”며 “이번 판결에 그런 가중 처벌 사유가 반영됐다고 보기 어려워 2심에서 다툴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가해자가 다른 피해자이기도 한 재판에서 영상 피해자는 모두로부터 피해를 입은 가장 막대한 피해자”라며 “사회적 지위가 높은 피해자가 명예 훼손 피해를 입는 것과 영상이 유포돼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 간의 피해를 다르게 보는 게 온당한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법 촬영 영상 법정서 재생…피해자 “이해할 수 없어”

또 피해자 측은 재판 과정에서 관련 동영상이 법정의 대형 스크린에서 재생됐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법정에 있었던 이은의 변호사는 “범죄를 단죄하는 과정에서조차 피해자가 누구인지 아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 영상을 보게 되는 상황과 피해자가 갖는 성적모욕감이 유포 범죄가 갖는 본질”이라면서 “피해자가 당일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영상이 에로영화라도 되는 것이냐며 한 시간을 울었다”고 전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대형 스크린 재생에 대해 “증거조사로 영상을 보는 과정을 원칙적으로 운영하고, 비공개로 재판을 진행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해 여성 A씨는 이날 KBS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A씨는 “얼굴을 잘라서 올리는 불법 촬영물이라고 하더라도 영상 속 여자가 피해자가 아닌 게 되는 건 아니다”라며 “제 주변 관계가 모두 무너졌다. 모든 인연을 끊고 숨어 지내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또 “영상 시청을 위해 재판이 비공개 전환됐다는 기사를 보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당황스러움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며 “비공개로 재판이 진행됐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영상이 시청됐다. 제 벗은 몸의 영상을 개방적인 공간에서 왜 ‘함께’ 시청되고 공유돼야 하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 18일 선고 결과에 대해 “피해자들이 황씨 형수에 대해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1심 선고형량이 가볍다고 판단된다”면서 항소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