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대국’ 8년…이세돌 “AI 발전 마냥 무서워해선 안 돼”

입력 2024-03-19 15:06 수정 2024-03-19 15:07
구글코리아가 19일 공개한 이세돌과의 인터뷰. /구글코리아

“제가 어떤 시합이든 댓글을 안 봐요. 그런데 알파고와의 대국땐 봤어요. 내가 얼마나 욕을 먹고 있나. 나 이제 오래 사나. 제 수명을 확인하려고 댓글을 봤는데 예상과 달리 ‘고생한다’, ‘끝까지 최선을 다 해달라’는 응원의 댓글이 많았습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2016년 ‘세기의 대국’을 펼쳤던 이세돌 9단이 19일 구글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근황을 전하면서 AI 기술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당시 이세돌은 구글 자회사인 딥마인드의 바둑 AI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인류 대표격으로 대국을 펼쳤다.

대국 3년 뒤인 2019년 은퇴한 이세돌은 “인공지능이 은퇴 결정에 많은 영향을 줬다”며 “은퇴 이후 인공지능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8년 전 알파고와의 대결을 회상했다. 이세돌은 “사실 당연히 제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파고가 인간과는 너무 다르게 둬서, 또 너무 잘 둬서 당황했다”며 “테니스에 비유하면 사람이 아니라 벽에 테니스 공을 치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인간 최고수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3연패를 당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세돌은 “1국에선 당황했고 3국에선 그로기(Groggy) 상태였다”고 떠올렸다. 그로기 상태란 권투시합에서 상대에게 큰 가격을 당해 비틀거리거나 정신이 몽롱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만큼 참패였다는 말이다. 그는 “제대로 붙어서 진건 2국이었다. AI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했었고 더 열심히 대비했다면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6년 당시 이세돌 9단과 딸

이세돌은 알파고를 상대로 네 번째 대국에서 마침내 첫 승을 거뒀다. ‘AI를 이긴 유일한 인간’이란 별명도 이때 생겼다. 이세돌은 4국을 앞두고 있던 당시를 돌아보며 딸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만으로 10살이었던 딸은 현재 고3이 됐다.

이세돌은 “3국까지 연달아 패배하고 그로기 상태였는데, 4국을 앞두고 딸이 ‘아빠 그냥 가지 마. 이미 끝났는데 뭘 또’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라며 “되게 많이 웃었고 그로기 상태도 풀어졌다”고 전했다. 당시 승리 직후 소감이 어땠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체면은 차렸구나”라고 웃으며 답했다.

세기의 대국 이후 바둑을 배우는 방식도 AI의 영향을 받아 변화했다. 이세돌은 AI로 인한 바둑의 변화에 대해 장단점을 모두 짚었다.

“제가 바둑을 배우던 시절엔 바둑은 혼자서 고민하고, 또 둘이 만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AI가 나온 이후로는 마치 답안지를 보고 정답을 맞히는 방식으로 변해 예술성이 퇴색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이세돌은 반면 AI가 앞당긴 ‘기보’의 발전을 언급하며 아마추어들에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기보는 바둑 둔 순서 대로 내용을 하나하나 적은 족보다. 그는 “기보는 알파고 출시 전후로 완전히 달라졌다”며 “이제 아마추어들은 어떤 수가 좋고 나쁜지를 AI 기보로 빠르고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엔 AI가 필요하죠. 기술은 결국 우상향하게 돼 있습니다.”

구글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세돌은 AI 발전 방향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속도조절’이었다. AI 기술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분명한 기준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세돌은 “기술을 대하는 준비가 안 돼 있을 때 어떤 파국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기술 개발이 공공선을 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AI의 발전을 마냥 무서워하는 태도로 대하는 건 정답이 아니라고 했다. 이세돌은 “미국과 중국 같은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AI 기술을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우리만 막연한 두려움으로 망설인다면 기술 발전에서 뒤쳐질 수 있다”며 “AI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공포는 조금 과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태어나도 프로 바둑기사가 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예전에는 긍정적으로 답했지만 알파고가 나온 뒤로는 생각이 달라졌다”며 “다시 태어나도 바둑은 취미로 즐겁게 배우겠지만, 프로 기사 대신 AI를 만드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최다희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