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AI와 겨뤘던 이세돌 “AI 나온 뒤 예술성 퇴색”

입력 2024-03-19 14:13 수정 2024-03-19 14:58
이세돌 9단이 구글코리아와 인터뷰하는 모습. 구글코리아 제공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유일하게 1승을 거둔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이 19일 “AI를 벌써 두려워하는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든 느끼지 않든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준비해서 (AI) 기술을 발전시켜야만 인간에게 유익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창립 20주년을 맞은 구글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같은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AI 기술을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인다면 (기술 격차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AI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공포는 조금 과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세돌은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는 AI가 너무 필요하기 때문에 속도를 조절하고 확실한 원칙을 갖고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가장 중요한 건 속도조절”이라며 “(AI) 기술이 너무 앞서 나가지 않도록 충분히 준비만 한다면 기술이 부정적 방향으로 발전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8년 전 알파고에 4승을 내주면서도 ‘인류를 지킨 1승’을 기록한 그는 당시 아쉬웠던 부분도 언급했다. 이세돌은 “그때 제가 당연히 이길 거라고 봤다. 당시에는 ‘구글에서 이런 AI도 만드는 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대국을 좀 쉽게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승부 호흡도 없고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수를 두는 모습을 보니 정말 벽에다 테니스 공을 치는 느낌이었다”며 “너무 잘 두니까 제가 너무 안일하게 준비를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이 바둑판에 사인을 하고 있다. 구글코리아 제공

AI가 바둑을 배우는 방식에 준 변화에 대해선 “처음 바둑을 배우는 과정 자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제가 바둑을 처음 배웠을 때는 바둑이 두 명이 함께 수를 고민하고 두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로 배웠다. 그런데 AI가 나온 이후로는 마치 답안지를 보고 정답을 맞히는 것 같아서 오히려 예술성이 퇴색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기보는 알파고 출시 전후로 완전 달라졌다. 과거의 기보는 바둑의 역사를 학습하는 용도 외에는 특별한 가치가 없어졌다. AI가 더 완벽한 기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AI를 보고 배우는 편이 더 편하다”고 말했다.

또 “아마추어들 입장에서는 AI를 보고 배우는 기보의 내용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배우고 즐기는 입장에서는 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어떤 수가 좋고 나쁜지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