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취임 100일’을 맞는 조희대 대법원장은 재판 지연 문제를 최우선 해결 과제로 두고 개혁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법원장 추천제 폐지 등 김명수 전 대법원장 유산 지우기를 본격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법관증원법 통과를 위한 국회 설득작업도 이어지고 있으나 임기 종료를 앞둔 21대 국회에서 통과되기는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다.
18일 대법원 법원행정처 관계자 등에 따르면 ‘조희대 대법원’의 사법부 개혁 방향은 주로 재판 처리 속도를 높이는 데 맞춰져 있다. 관리자 역할이었던 법원장이 직접 실무 재판을 맡는 등 사법부 고위직들부터 모범을 보이겠다는 메시지를 일선에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각급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 인사를 보면 재판 업무에 매진해온 인물들을 우대하겠다는 방침이 읽힌다는 평가도 있다.
한 재경 법원 부장판사는 “‘적어도 자기 집단 사람들로만 법원을 운영하지는 않는다’는 명확한 메시지는 줬다”면서도 “아직 눈에 띄는 새로운 제도를 제시했다고 볼 수는 없어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인기투표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은 법원장 추천제는 조 대법원장 체제에서 폐지로 가닥이 잡혔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첫 기자간담회에서 “법원 구성원이 자기 법원장을 추천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법원장 추천제는 ‘김명수표 사법개혁 정책’ 중 하나로 지방법원 소속 판사들이 투표로 법원장 후보를 2~3명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그중 법원장을 임명하는 제도다. 수평적·민주적 사법행정 강화 목적으로 2019년 도입됐다. 하지만 고위 법관들이 표를 의식해 사법행정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졌고, 재판 지연 심화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현재 대법원은 김 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권한을 약화하기 위해 도입했던 ‘사법행정 자문회의’ 폐지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재경 법원 부장판사는 “두 제도는 전임 대법원장의 가장 중요한 정책적 유산으로 볼 수 있다”며 “그것이 없어진다는 것은 ‘김명수 지우기’로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에는 김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9년 폐지됐던 전국 수석부장판사 회의가 5년 만에 부활했다. 사법농단 사건 당시 법원행정처가 각급 법원 수석부장판사를 매개로 일선 재판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폐지됐던 행사였다. ‘사법부 허리급’ 법관 이탈을 막기 위해 수도권에서 뽑힌 고법판사들은 지방 순환 근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법관증원법 통과를 위한 국회 설득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2월 법관 임용 관련 연구를 이어온 김신유(47·사법연수원 35기) 부장판사를 국회 파견 법관으로 인사 냈다. 한 재경 법원 부장판사는 “‘조희대 대법원’의 법관 증원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할 수 인사”라고 말했다.
다만 판사 정원을 늘리려면 검사 수도 늘려야 한다는 여당, 판사만 늘리자는 야당이 맞서고 있어 21대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 국회 임기가 종료되는 오는 5월 29일까지 처리되지 못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이형민 양한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