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게 뒤집은 신데렐라 이야기로 시청자 붙든 ‘눈물의 여왕’

입력 2024-03-18 17:05
tvN '눈물의 여왕' 포스터. tvN 제공

대한민국 최고 재벌가의 자제와 결혼하면서 재벌가의 제사를 대신 챙기고 “아니 막말로 홍씨 조상 제사인데 준비하는 사람은 김씨, 유씨, 조씨, 백씨. 홍씨 조상 제사면 홍씨들이 지낼 것이지!”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풍경이라니. 요즘 시대에 웬 구시대적 장면이야, 싶지만 ‘눈물의 여왕’에선 이 같은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양복 입은 사위들이다. 하나같이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직업에 집안을 가졌지만, 홍씨 집안에선 전이나 부치는 처지다.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였지만 ‘눈물의 여왕’은 전형적인 장면을 보기 좋게 전복시켰다. 돈 많은 재벌가의 남자와 사랑에 빠진 평범한 여성이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뤄내는 식의 신데렐라 이야기도 가볍게 비껴간다. 퀸즈 그룹 재벌 3세인 홍해인(김지원)과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 백현우(김수현)의 운명 같던 사랑을 지나 관계에 위기가 찾아온 현재가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다. 뻔한데 뻔하지 않은 전개의 연속이다.

tvN '눈물의 여왕' 중 한 장면. tvN 제공

시청자들은 이 ‘뻔한데 뻔하지 않은’ 드라마에 반응하고 있다.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방영 4회 만에 전국 평균 시청률 13.0%(닐슨코리아 기준)까지 치솟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동 시간대 방영 작품이 시청률 10%를 오가는 ‘재벌X형사’와 ‘원더풀월드’로 쟁쟁한 가운데서도 ‘눈물의 여왕’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지난 9일 첫 회가 방송됐을 땐 5.9%였던 시청률이 최근 방송된 4회(17일)에선 13.0%까지 치솟으며 시청률이 배가 됐다.

드라마 방영 전부터도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와 김수현이 재회한 작품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았는데, 작품이 그 기대에 부응하는 모양새다. 사회적 고정관념을 모조리 뒤집으며 코믹하게 풍자하는 장면들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와 재미를 선사한다. 사실 성 역할을 반전시킨 서사가 아주 새로운 건 아니다. 특히 주체적이면서 남성보다 부와 권력을 더 갖고 있는 여성 캐릭터는 계속해서 등장해왔다. 그런데도 ‘눈물의 여왕’이 시청자들을 끌어당기는 건 왜일까.

tvN '눈물의 여왕' 백현우 포스터. tvN 제공

우선 백현우란 캐릭터의 차별성이다. 그간 남녀의 성 역할을 전복시킨 드라마들은 수없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남자 주인공은 듬직하고 기댈 수 있는 남성성을 내세웠다. ‘사랑의 불시착’을 봐도 철없는 재벌가 여자(윤세리)와 북한 군인(리정혁)의 사랑을 다뤘지만 리정혁은 과묵하고 듬직한 남자였다. 하지만 백현우는 달랐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예전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여성 캐릭터가 동정과 연민을 자아냈던 것처럼 ‘눈물의 여왕’에선 백현우가 완벽히 그 자리에 들어갔다”며 “남성성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전통적인 여성의 자리에) 완벽히 체화돼있는 백현우란 캐릭터가 웃음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성 역할의 전복이 단순히 남녀의 성별만 대체시킨 게 아니라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구도를 엿볼 수 있게 함으로써 더 폭넓은 공감을 끌어낸다는 해석도 있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사위들이 제사를 준비하는 장면을 보면, 다들 능력 있는 사람들인데 소위 말하는 재벌가의 가정 내 갑질을 당하고 있다”며 “이처럼 약자와 강자의 구도로 확대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몰입도가 높았다고 본다”고 했다.

tvN '눈물의 여왕' 스틸컷. tvN 제공

진지하고 심각하기보다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로 즐길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도 인기에 한몫했다. 그러면서도 마냥 밝지 않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퀸즈 그룹이 가진 비밀이 밝혀질 것이란 복선들이 나오며 흥미와 기대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여기에 ‘로맨틱 코미디 천재’로 불리는 김수현과 김지원의 비주얼 합과 능청맞은 연기력이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윤 교수는 “내용뿐 아니라 배우와 드라마 전반에서 풍기는 산뜻한 분위기가 있어 시각적 즐거움도 큰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