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양모씨는 보청기를 끼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는 아이 셋을 혼자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기도 하다. 잘 때만이라도 보청기를 빼고 편하게 잠드는 게 양씨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밤늦게 퇴근하면 집 주차장은 항상 만석이었다. 이중주차를 해야만 했던 양씨는 혹여나 아침에 차를 빼달라는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잠도 못 자고 버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양씨는 4년 전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을 알게 된 후 보청기를 빼고 편하게 잠자리에 들고 있다. 도우미견 ‘메이’가 아침에 전화가 오면 양씨의 몸에 올라타 깨워주기 때문이다. 양씨는 18일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하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은 주인 대신 소리를 듣고 소리가 나는 곳까지 주인을 안내한다. 지난 11일 방문한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에서는 도우미견 훈련이 한창이었다. 경기도 평택에 자리잡은 이곳 훈련소에서 강아지들은 일반 가정집과 같은 환경에서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날 만난 푸들 ‘나무’는 침대에 누워 자는 척을 하는 훈련사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 나무는 벌떡 일어나 방문으로 달려갔다. 방문에서 나는 소리를 확인한 나무는 다시 침대로 달려가 훈련사의 몸 위에 올라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주인이 완벽하게 몸을 일으킬 때까지 이런 행위를 반복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갑자기 몸을 일으킨 훈련사가 나무를 바라보며 검지를 흔들었다. 이는 수어로 ‘어디’라는 뜻이다. 훈련사의 수어를 읽은 나무는 초인종 소리가 나는 방문으로 훈련사를 안내했다. 이런 식으로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은 자동차 경적, 아이 울음소리, 노크, 화재 경보 등의 소리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는 1992년부터 매년 평균 20마리씩 도우미견을 장애인들에게 무상 영구임대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소유권을 넘기면 도우미견을 임의로 처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협회는 도우미견으로 적합한 품종을 번식해서 육성하고 있다. 강아지들이 태어나면 ‘퍼피워커’들에게 위탁해 생후 약 8개월까지 일반 가정집에서 생활하도록 한다. 퍼피워커는 도우미견이 될 강아지들을 맡아 양육해주는 자원봉사자를 뜻한다. 이후 협회로 돌아온 개들은 훈련사의 보살핌 아래 8~10개월 정도 훈련을 받는다. 이후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의 집으로 향하게 된다.
개들도 늙고 병들기 마련이다. 도우미견이 병이 들면 임대를 해 간 장애인들이 반려견으로 입양하거나, 도우미견을 돌려주고 새로운 도우미견을 분양해 간다. 그렇게 돌아오게 된 도우미견은 자원봉사자의 집에서 노후를 보내게 된다.
협회는 시각장애·지체 장애·뇌전증 도우미견까지 훈련시키고 있다. 지체장애인 도우미견은 이들의 불편한 손과 발을 대신해 휠체어를 끌어주고 스위치를 끄거나 켠다. 신문이나 리모컨 등 원하는 물건을 가져다주거나 쓰레기를 버려주기도 한다.
뇌전증 도우미견의 경우 주인이 발작을 일으키면 소리 내 짖어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뇌전증 환자는 경련을 일으키며 앞으로 쓰러지면 크게 다치거나 기도폐쇄로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뇌전증 도우미견은 크게 짖은 후 주인 앞에 엎드려 앉는다. 앞으로 쓰러지는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형구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회장은 “도우미견 육성은 한 개인이나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며 “자원봉사자와 훈련사, 그리고 정부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 역할 분담을 해서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운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편견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시각장애인 도우미견과 달리 청각장애인 전용 강아지는 인지도가 낮다. 시민들에게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한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도우미견은 모든 공공장소에 출입할 수 있으나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이 “왜 반려견을 공공장소에 데리고 오느냐”며 따지는 일이 잦다고 한다.
도우미견과 동행하는 장애인은 ‘장애인 도우미견 표시증’을 항상 지참하고 도우미견에게는 전용 가운을 입혀야 한다. 이 회장은 “장애인 도우미견 표시증이 있고, 도우미견임을 알아볼 수 있는 옷을 입고 있음에도 버스 등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 및 숙박시설 등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도우미견 출입을 거부하면 장애인복지법 제40조에 따라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설명했다.
평택=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