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때로는 네 이웃을 경계하라

입력 2024-03-17 19:20

그녀는 오래전에 이혼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업에 실패한 남편이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면서 이혼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이혼한 후에도 외동딸의 양육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렇듯 전 남편은 막노동을 해서라도 딸의 양육비를 대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녀뿐만 아니라 딸과도 자주 소통했다. 그 덕분에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그녀는 부족하나마 저축도 할 수 있었다.

사실 그녀는 전 남편과 자주 만나고 있었고 재결합까지도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중에는 특히 그녀와도 사이가 각별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 부부가 있었다. 그녀와는 이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나름 평안했던 그녀의 삶이 한순간에 불행으로 내몰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은 전 남편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그날 전 남편은 친구 부부의 초대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녀는 일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다. 이 부부는 전 남편에게 이런 솔깃한 제안을 했다.

“친구야, 자네도 알다시피 장모님이 파산하면서 관재인의 도움을 받아 빚을 탕감받았잖아. 그런데 이 관재인 말이 관재인이 도와주면 집도 싸게 살 수도 있다고 해. 내가 건설회사 대표인 거 알지? 나도 이런 식으로 집을 반값에 사는 사람도 봤어. 자네 딸이 벌써 서른이 넘었잖아. 자네 딸도 이 아파트를 싸게 살 자격이 되는 것 같은데, 아파트 하나 사주면 어때? 내가 도와줄게.”

‘설마 이렇게 친한 친구가 나를 등치랴’라고 생각한 전 남편은 바로 그녀에게 전화해서 친구 부부의 제안을 전달했다. 그녀도 ‘전 남편의 친구이자 이웃인 이 부부가 설마 그녀까지 등치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제법 큰돈이 들어가는 만큼 확인을 위해 다음날 만나서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날 그녀의 집에 친구의 부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혹시 몰라서 딸과 함께 그 부인의 설명을 들었다. 직접 들으니 전날 전화로 들었던 때보다 훨씬 믿음이 갔다. 그녀가 매수 의사를 내비치자 이렇게 덧붙였다. “서류도 조금 복잡하고...바쁘시니까, 돈만 보내주면 모든 절차는 우리 부부가 처리해 드릴게요.”

그렇게 그녀와 전 남편은 부모의 이혼으로 적지 않게 상처를 받았을 딸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아파트를 사줄 수 있게 되어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게 되었다는 생각에,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모으고 부족한 돈은 친척에게 빌려서 친구 부부에게 송금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잘 좀 부탁한다’고 전화까지 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전 남편의 친구는 이런 식으로 여기저기에서 돈을 받아서 문제를 일으켜 작은 건설회사에서 쫓겨난 지 꽤 되었고, 다른 피해자들이 고소를 해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그녀로부터 받은 돈으로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결국 친구 부부는 둘 다 구속되었다.

그녀는 그 충격에 한동안 드러누웠으나,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먼저 돈을 빌린 친척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매달 조금씩 갚아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친척이 그녀를 위로하며 말한다. “자네가 걱정이지.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 내 돈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거든 그때 천천히 갚아도 되니 힘내게나” 이 말에 그녀는 오늘도 힘을 내서 식당으로 출근한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가까운 이웃보다 먼 친척이 나은 경우도 있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