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금리와 경기 침체의 여파로 지난해 기업결합 심사 건수가 1000건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결합 금액은 일부 해외 빅테크의 대규모 인수합병(M&A)에 힘입어 오히려 증가했다.
1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기업결합 심사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가 처리한 기업결합 심사 건수는 총 927건으로 전년 대비 100건(9.7%) 줄었다. 1113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1년 이후 2년 연속 감소다. 이병건 공정위 기업집단결합정책과장은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고금리가 계속되면서 기업결합 및 신고 건수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기업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국내 기업에 의한 기업결합은 739건으로 1년 사이 137건(15.6%) 감소했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회사에 의한 기업결합은 지난해 총 231건이 처리돼 1년 전보다 12.1% 줄었다. 이 중에는 SK가 26건으로 가장 건수가 많았다. 이어 중흥건설(13건), 한화(9건), 네이버(8건), 카카오(7건) 등이 뒤를 이었다. 계열사 간의 구조개편 차원 결합을 제한 ‘실질적 기업결합’도 감소 추세를 피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비계열사 간 기업결합은 518건으로 1년 사이 62건(10.7%) 줄었다.
다만 기업결합 금액 규모는 431조원으로 오히려 전년 대비 105조원(32.2%)이 늘었다. 지난해 일부 해외 빅테크 기업이 대규모 M&A를 성사시킨 영향이다. 지난해 공정위가 처리한 가장 큰 규모의 기업결합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89조원)였다. 브로드컴의 브이엠웨어 인수가 78조원 규모로 그 뒤를 이었다.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2차전지 부문은 전기차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활발한 기업결합이 이뤄졌다. 공급 안정과 원가 절감을 위해 일진머티리얼스를 인수한 롯데케미칼이 대표적이다. 북미 현지 생산을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내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영향을 미쳤다. LG에너지솔루션·SK온 등 배터리 업체와 미국 현지에 합작회사를 차린 현대자동차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