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이 득세하고 기독교가 미신으로 치부됐던 나라에서 자라서 성경에 마음을 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제가 성경을 읽는 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필수적 내용이 성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베라 미틱 세르비아성서공회 총무가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대한성서공회 본부에서 전한 자국 기독교인의 간증이다. 발칸반도 서부 지역 6국 중 하나로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연방공화국(유고연방) 분열 과정에서 내전의 아픔을 겪은 세르비아는 현재 정치적 안정과 경제 성장을 꾀하는 중이다.
대한성서공회(사장 권의현)는 세르비아를 비롯한 서발칸 지역 7개 성서공회를 후원해 이들 국가의 성서 보급을 돕고 있다. 이날 공회가 개최한 ‘서발칸 지역 성서공회 총무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미틱 총무는 “세르비아는 아직 유럽연합(EU) 미가입국으로 빈곤선 이하 인구가 9%에 달한다”며 “서민을 기준으로 성경 판매가를 책정하기에 수입이 대단히 낮은 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대한성서공회의 지원 덕에 학교와 병원, 요양원 등에 성경을 보낼 수 있었다”며 “특히 로마니 공동체 등 취약 계층에게는 무료로 성경을 제공하고 있다. 수십 년간 협력해준 대한성서공회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세르비아정교회와 가톨릭교회, 침례교회와 오순절교회 등과 협력해 초교파적으로 활동 중인 세르비아성서공회는 150년 만에 히브리어 원문을 번역한 세르비아어 구약성서를 지난 2020년 출간했다. 미틱 총무는 “새로운 역본의 출간으로 성경 반포율이 이전보다 50% 이상 성장했다”며 “오는 2027년을 목표로 신약성서도 번역 중이다. 현대 세르비아어로 된 성경을 누구나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간담회에는 다미르 리포브섹 크로아티아성서공회 총무도 참석해 자국 성서 보급 및 선교 현황에 대해 보고했다.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처럼 유고연방 출신 국가로 내전 등을 거쳐 양국 관계가 악화했지만 이들 성서공회는 협력하며 인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보스니아 등에 성서를 보급하고 있다. 리포브섹 총무는 “크로아티아는 EU 가입국이긴 하지만 정치적인 면에선 아직 불안정하다”며 “유고연방 몰락 이후 생긴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대한성서공회의 꾸준한 지원으로 지난해엔 1만4000권의 성서를 반포했다”고 밝혔다.
가톨릭 정교회 루터교 개혁교회 등 여러 교파와 협력하는 크로아티아성서공회는 1995년 설립 당시보다 5배 가까운 성서를 발행해 자국 및 인접국에 전달하고 있다. 큰 활자나 포켓용 성경 등 여러 형태의 성서를 제작하는 것도 큰 변화다. 리포브섹 총무는 “대한성서공회는 재정 지원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성서를 제작할 수 있도록 기술 지원도 해줬다”며 “우리뿐 아니라 여러 성서공회에 훌륭한 성경 제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년간 ’새로운 성경 번역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크로아티아성서공회는 히브리어 등 원어를 번역한 크로아티아어 성경을 준비 중이다. 출간 예정 연도는 2025년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크로아티아 수어 번역 성경도 제작하고 있다.
아울러 크로아티아성서공회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기독교인을 위한 기도를 부탁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국민 다수가 모슬렘으로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할 경우 고향이나 직장, 가족관계를 떠나야 하는 등의 박해를 받는다. 리포브섹 총무는 “심하면 목숨의 위협도 받는다. 이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믿음을 잃지 않고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우리는 성경을 읽는 이들이 가장 쉬운 방법으로 신앙의 진리에 도달하는 한편 성경의 문학적 아름다움도 음미하길 바란다”며 “성경이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아는 책’, 즉 ‘독자를 읽는 책’이라는 걸 많은 이들이 알도록 발칸 지역 성서 제작과 반포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호재민 대한성서공회 총무는 “해마다 100여국에 200개 언어로 된 성서를 60~70개국 성서공회에 보급하고 있다”며 “이들 성서공회에서 한국교회에 인사하는 기회를 마련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반도에 성경이 들어올 때 영국과 스코틀랜드, 미국성서공회의 도움이 있었다”며 “그간 후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도 여러 국가 성서공회와 협력하고 있다. 지구촌 이웃에게 성서를 후원한 한국교회 성도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