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독박 육아(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 논쟁. 해묵은 논쟁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는 주제인가 봅니다. 요즘에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 독박 육아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는 아내들의 글이 종종 게시되는 걸 보면 말이죠.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은 여성 A씨의 사연이 많은 네티즌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맞벌이 부부인데, 퇴근 후나 주말만 되면 여성인 자신이 묘하게 양육을 더 책임지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A씨는 결혼한 지 10년 차 부부로, 남편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받는 ‘맞벌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동의 하에 오랜 기간 임신과 출산을 미뤘다고 하는데요. 소소한 다툼은 있어도 대화로 잘 해결하며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유지해왔는데, 약 2년 전 자녀가 생긴 뒤 A씨는 묘한 느낌을 받게 됐다고 합니다. 똑같이 직장 생활을 하고, 경제적 기여도도 비슷한데, 어느새 자신이 ‘주양육자’가 되었다는 것이죠.
A씨가 주장한 그의 일과는 이렇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가족의 저녁 식사를 준비합니다. 그동안 남편은 서재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식사가 준비된 뒤에야 서재 밖으로 나옵니다. 식사 시간 동안 아이를 먹이는 것도 A씨의 몫입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남편이 아이를 씻기는 동안 A씨는 뒷정리를 합니다. 이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등 놀아주며 잠들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가 잠든 뒤에는 설거지와 밀린 집안일이 A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서재에서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등 여가 생활을 즐깁니다. A씨는 “아이를 갖기 전에는 남편이 퇴근 후 홀로 여가시간을 보내도 다 이해했는데, 지금은 이 불공평함이 자꾸 보인다”면서 “외향적인 성격의 남편은 주중 저녁이든 주말이든 집에만 있는 걸 답답해한다”고 적었습니다. 자신은 내향적인 성격인지라 집에서 지내는 걸 좋아하지만, 간혹 친구들과 약속이 있을 때도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서요.
A씨가 이런 상황에 늘 불만을 갖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런 불공평함을 인식하게 될 때면 ‘왜 나만 이걸 다 하고 있지’라는 생각에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온다는 것이죠. 그는 이런 감정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지적한 부분은 자연스레 여성이자 엄마인 자신이 주양육자가 되고, 남성이자 아빠인 남편은 ‘육아를 도와준다’고 인식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인터넷에 게시된 익명의 글이지만, A씨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비슷한 고충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었죠. 현실에서는 남편이 이 정도로 육아에 기여하면 ‘좋은 아빠’에 속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17일 공개한 ‘젠더 관점의 사회적 돌봄 재편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A씨의 고민은 어쩌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살펴볼 수 있는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지난해 8월 0~7세 영유아를 둔 5530명(여성 3564명·남성 196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맞벌이 가구에서 아동의 어머니가 감당하는 하루 평균 돌봄 시간은 11.69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아동의 아버지는 4.71시간에 불과했죠. 어머니의 돌봄 시간이 아버지의 2.5배 수준이었습니다.
연구원은 또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 맞벌이 가구의 돌봄 방식을 분석했는데요. 출근 전과 퇴근 이후에 아이를 돌보는 것은 대부분 어머니였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오전 6시부터 오전 8시까지 어머니의 돌봄 비율은 60~80% 수준이었지만, 같은 시간대 아버지의 돌봄 비율은 10%대에 그쳤죠. 일과 시간에 접어들면서 돌봄 부담은 돌봄 기관이나 아동의 조부모 등에게 넘어가는 흐름을 보이다가 퇴근 무렵부터 다시 아동의 어머니가 떠안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후 6시 기준 영아(0~2세)를 둔 맞벌이 가구의 돌봄 비율과 관련, 아동의 어머니는 55.2%, 아동의 아버지는 20.2%로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A씨의 하소연이나 연구원의 보고서가 누군가를 질타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겁니다. 경제 활동과 양육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의 상황을 조명하고, 해결책을 논의해 보자는 것이겠지요. 실제로 연구원 측은 “여성에게 집중된 돌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돌봄과 일의 균형이 가능한 노동 시장을 구축하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수준의 공적 돌봄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엄마이든 아빠이든 ‘돌봄과 일의 균형이 가능한 노동 시장’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수준의 공적 돌봄’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회의 한 구성원이자 좋은 엄마, 좋은 아빠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은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똑같을 겁니다. 참 쉽지 않아 지치고, 닿을 듯 닿지 않아 또 지치는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든 엄마와 아빠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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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