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무려 140만명!… ‘스몰럭셔리’ 디저트 전성시대

입력 2024-03-17 06:05 수정 2024-03-17 09:06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 1층에 대규모로 조성된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파크'가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 1층 식품관. 긴 줄이 꼬불꼬불 늘어서 있었다. 목을 길게 빼고는 상품 진열장을 살펴보거나, 스마트폰을 들고 후기를 검색하거나, 이미 양손에 도넛과 케이크를 들고 있는 이들이 길게 늘어선 줄 곳곳에서 보였다. 평일 오후인데도 인파로 북적이는 이곳은 신세계 강남점의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파크’다.

스위트파크는 지난달 15일 문을 연 뒤 현재 서울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지난 14일까지 누적 방문객 수는 140만명이었다. 오픈 한 달간 신세계 강남점의 디저트 매출 신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배를 넘어섰다. 불황의 시대, ‘스몰럭셔리’로 떠오른 디저트 열풍은 올해도 식지 않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대가 가장 선호하는 매장 중 하나로는 일본 밀푀유 디저트 전문점 ‘가리게트’였다. 지난 12일 가리게트 대기 줄에 서 있던 도모(29)씨는 “처음에 위치를 찾느라 좀 헤맸는데 사람들이 많은 곳을 보고 ‘아 저기구나’ 했다”며 “30~40분, 길게는 1시간까지는 기꺼이 기다려보려고 한다. 예쁘고 다양한 케이크와 베이커리를 구경할 수 있어서 와볼 만한 곳 같다”고 말했다.

일본의 밀푀유 파이 전문점 '가리게트'의 제작 과정 샷. 가리게트는 20대 소비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매장 중 하나로 집계됐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스위트파크는 5300㎡(약 1600평) 규모의 공간에 국내외 가장 핫한 디저트·베이커리 전문점 43개로 꾸려졌다. 주말에는 오후 4~5시면 대부분 매장 제품이 품절될 정도다. 개장일인 지난달 15일에는 오전 8시 이전부터 신세계 강남점 앞에 스위트파크를 향한 오픈런 줄이 길게 이어졌다.

그날 가장 대기가 길었던 매장 중 하나가 부산의 베이커리 전문점 ‘초량온당’ 팝업스토어였다. 지난 3일 스위트파크를 다녀온 남모(28)씨는 “오전 10시에 대기를 걸었는데 4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낮 12시쯤에는 아예 예약이 마감됐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초량온당은 팝업 운영을 위해 한 달간 본점 문을 닫을 만큼 신세계강남점 팝업에 진심이었다.

스위트파크의 흥행은 예상을 앞질렀다. 20~30대 핫플레이스인 신세계 강남점에 들어선 만큼 ‘불패’는 예견된 일이었다. 하루 평균 4만7000여명이 다녀갔고, 신세계 강남점 신규 방문객은 90% 늘었다. 20대 매출은 전년 대비 약 4배, 30대는 2.4배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스위트파크 오픈 이후 식품 전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배 늘어날 정도의 압도적인 반응까지는 내다보지 못했다.

지난달 15일 스위트파크가 오픈한 날 오전, 한 디저트 매장에 방문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불황의 시대에 디저트가 스몰럭셔리로 입지를 굳힌 것은 왜일까. 손바닥만 한 케이크가 2만원에 육박해도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드는 디저트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즐거운 경험’, 그리고 ‘인증사진을 공유하고 싶게 만드는 비주얼’.

화려한 디저트로 채워진 진열장을 보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으로 간주된다. 달콤한 향, 다채로운 색감, 미적 경험을 충족시킬 만한 디자인까지 더해지면서 경우에 따라 일종의 미술 전시를 경험하는 기분까지 들게 할 수 있다. 대개는 맛도 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겠으나 ‘이렇게 생긴 건 어떤 맛일까’를 알게 하는 것 자체도 괜찮은 경험으로 여겨진다.

소셜미디어의 호황 또한 스몰럭셔리로써 디저트의 가치를 높인다. 무엇보다 공유하고 싶은 비주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핫플인 경우 그 매력도는 더 올라간다. 남들과는 다른, 남들은 아직 하지 못한 차별화된 경험에 대한 설명이 한 장의 사진으로 대체된다. 오픈런이나 장시간 웨이팅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해냈다’는 나름의 서사가 사진 한 컷으로 설명되는 것이다.

디저트가 핫플레이스와 만나면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스위트파크의 흥행도 43개 디저트 맛집을 불러 모은 곳이 ‘신강’(신세계 강남점을 부르는 애칭)이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핫플은 프랑스나 일본 맛집의 ‘해외 1호점’ 유치도 가능하게 할 정도가 됐다. 신세계 강남점, 더현대 서울, 롯데월드몰 이 세 곳은 20~30대의 핫플인 동시에 가장 트렌디한 맛집 집합소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1층에 문을 연 ‘런던 베이글 뮤지엄’ 매장 전경. 롯데백화점 제공

롯데월드몰은 지난해 ‘런던 베이글 뮤지엄’과 ‘노티드’를 유치하며 디저트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시작한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그간 백화점 입점은 하지 않으며 나름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롯데월드몰에 들어섰고, “백화점에 입점하면 그 맛집은 내리막길이다”라는 통념을 부쉈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지난해 예약 애플리케이션 캐치테이블에서 ‘웨이팅(대기) 1위’ 맛집에 등극했다.

지난해 3월 롯데월드몰에 입점한 도넛 브랜드 ‘노티드’는 캐치테이블 웨이팅 3위를 차지했다. 롯데월드몰의 ‘노티드 월드’는 월평균 12만명,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월평균 15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노티드 월드가 문을 연 이후 5~6층 전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늘었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위치한 1층 매출도 비슷한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 14일 오후 런던 베이글 뮤지엄 롯데월드몰점에서 만난 직장인 성모(36)씨는 “포장 대기가 그나마 금방 빠지는 편이라 포장 주문을 예약한다”며 “직장 근처라 평일 점심 먹고 난 뒤 웨이팅을 걸어 두는데, 4시간 뒤에 연락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더현대 서울은 지난해 9월 ‘테디뵈르 하우스’의 오픈으로 관심을 모았다. 미쉐린 출신 셰프의 크루아상 전문점인 테디뵈르 하우스는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프렌치 스타일의 메뉴로 소셜미디어에서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서울 용산구 ‘쌤쌤쌤’의 김훈 오너셰프가 운영하는 곳으로 오픈 첫 달 월 매출 3억원을 올릴 만큼 인기였다.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에 입점한 '테디뵈르 하우스' 전경. 테디뵈르 하우스 제공

앞서 지난해 7월엔 용산 프레첼 전문점 ‘브래디포스트’, 약과 전문점 ‘골든 피스’를 입점시키며 디저트 마니아들을 설레게 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더현대 서울은 20~30대를 공략하기 위해 식품관 매장 3분의 1 이상을 베이커리·디저트로 채웠다. 디저트와 베이커리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파티시에나 셰프들이 더현대 서울을 주기적으로 방문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디저트 불패 신화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불황이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작은 사치를 통해서라도 소소한 즐거움을 충족시키려는 경향은 쉽게 가라앉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먹거리는 의류보다 진입장벽이 낮고, 화장품보다 보편적으로 통용된다. 디저트 열풍이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이유다.

백화점 업계 한 관계자는 “디저트는 20~30대 고객이 백화점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드는 핵심 콘텐츠가 됐다”며 “특히 대기 시간이 긴 맛집 유치는 특히 중요하다. 대기하는 동안 백화점에 머물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구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업계의 맛집 유치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