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성동갑] 여야 ‘여전사’…‘경제전문가’ VS ‘민생전문가’ 맞대결

입력 2024-03-12 16:26
서울 중·성동갑에 출마한 윤희숙 국민의힘 후보가 11일 서울 성동구 한양시장 일대에서 시민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전현희 후보가 같은 날 경동초등학교 앞에서 등교길 유세에 나선 모습. 최현규 권현구 기자

‘한강 벨트’에 속해 있는 서울 중·성동갑은 4·10 총선의 격전지로 꼽힌다. 야권 지지 성향이 강해 한동안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겨졌지만 성수동에 고가 아파트가 들어서고 왕십리·행당동·도선동 뉴타운 집값이 오르면서 보수세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2004년 17대부터 2020년 21대까지 총 5번의 총선에서 18대를 제외하고 모두 민주당이 승리했다. 이후 지난 2022년 치러진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선 국민의힘이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어느 당도 절대 우세를 장담할 수 없는 곳이어서 결국 중도층과 스윙보터 표심이 승패를 가를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출신으로 문재인정부의 실정을 조목조목 비판했던 윤희숙 전 의원을 후보로 내세웠다. 민주당은 총선 흐름을 이끌 ‘여전사 3인방’ 중 한 명인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전략공천했다. 윤 후보는 ‘경제전문가’, 전 후보는 ‘민생전문가’를 내걸고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국민일보는 총선을 30일 앞둔 지난 11일 두 후보의 유세 현장에 동행해 민심을 살펴봤다.

지역에서 만난 주민들은 정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투표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이모(35)씨는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공약을 제시하고 달성할 수 있는 후보를 뽑겠다”고 말했다. 주부 신소영(46·여)씨도 “후보들이 어떤 경력을 갖고 있고 무슨 일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독점정치 20년…주민 열망 억눌렀다”

서울 중·성동갑에 출마한 윤희숙 국민의힘 후보가 11일 서울 성동구 응봉체육공원에서 성동구여성축구회 회원들과 축구 연습을 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오후 6시 왕십리역 6번 출구 앞 한양시장. 빨간색 점퍼 차림의 윤 후보는 인근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식당 골목을 다니며 길거리 유세를 벌였다. 윤 후보는 테이블을 돌며 “국민의힘 윤희숙입니다. 많이 드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한 중년 남성은 윤 후보의 손을 맞잡고 “저도 빨간 모자를 썼다. 열심히 해서 이번에 꼭 바꿔달라”고 호응했다.

냉담한 반응도 없지 않았다. 윤 후보가 한 카페에 들어가 잠시 인사를 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직원은 “손님들이 불편해할 것 같다”며 거절했다. 윤 후보는 “어디를 가든 먼저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멋쩍게 웃고는 약국, 네일샵, 부동산, 곱창집 등 불 밝힌 상가에 들러 얼굴도장을 찍었다.

윤 후보는 “민주당 지지세와 조직력이 강한 곳인 걸 알고 왔다”며 “제가 한사람 한사람 직접 마주하고 진심을 전달하는 게 20년간 이어진 민주당의 독점정치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역을 돌아보면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도 있다”며 “민주당은 이곳을 텃밭으로 여길 뿐 지역 현안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역 발전을 바라는 주민들의 열망이 오랜 기간 억눌려왔다”고 덧붙였다.

윤 후보는 24시간 진료·입원이 가능한 ‘안심 어린이 병원’ 유치, 민간 주도로 왕십리 역세권을 ‘경제 허브’로 개발, 지하철 3호선 지선 신설을 통한 도심 접근성 개선, 뚝섬유수지에 각종 생활체육센터 조성 등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윤 후보는 “어린이 병원 유치는 아이 엄마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 뒤 야심차게 내놓은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또 “왕십리 지역의 민간 사업이 행정기관에 발목잡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관련 기관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도시 활력을 깨우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통인 윤 후보는 2019년 KDI 교수 시절 문재인정부의 재정·복지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포퓰리즘 파이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21대 국회의원 시절엔 문재인정부의 대표적 부동산 정책인 ‘임대차 3법’에 반대하는 ‘나는 임차인입니다’ 연설로 이름을 알렸다.

윤 후보는 여전사라는 수식어보다 경제전문가를 부각했다. 그는 “이렇게 할 일이 많은 지역에 온 순간부터 ‘누구와 싸운다’는 것보다는 제가 가진 식견과 능력을 발휘해 주민들의 삶을 더 좋게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윤 후보를 지지한다고 한 주민들은 윤 후보의 경제적 전문성을 높이 평가했다. 왕십리역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33)씨는 “두 후보 모두 방송에서 많이 봤지만 전문성 측면에선 윤 후보 쪽이 더 믿음직하다”며 “다만 정권심판이 우선인지, 후보를 보고 투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인의 정치 성향을 중도라고 밝힌 60대 남성은 “전 후보는 권익위원장 시절 독한 이미지가 두드러져 보였고 윤 후보는 능력이나 인성 면에서 건실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평가했다.

윤 후보는 민주당이 부친의 땅투기 의혹을 문제삼고 있는 데 대해선 “민주당이 저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저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 깔끔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고 부친도 땅을 처분해 전액 기부했다”며 “만나는 주민들마다 ‘책임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말씀해주신다”고 설명했다.

윤 후보는 이날 응봉체육공원에서 성동구여성축구회 회원들을 만나고 한강공터에서 시민들과 달밤 체조를 하는 등 밤늦게까지 지역밀착형 유세를 이어갔다.

“당선되면 윤 후보는 1.5선, 나는 3선…경험·경륜 있는 지역 발전의 적임자”

서울 중·성동갑에 출마한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1일 서울 성동구 경동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권현구 기자

“전현희 후보가 유능한 분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재명의 민주당’을 찍고 싶지는 않아요.”

오전 7시30분 성수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만난 직장인 서지민(40·여)씨는 지지 후보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서씨는 출근길에 뚝섬역 1번 출구 안 개찰구에서 유세 중이던 전 후보와 마주쳤다. ‘주민만 바라보겠다’는 의미로 왼쪽 어깨에 해바라기를 단 전 후보는 웃는 얼굴로 서씨에게 다가갔다. 주춤하던 서씨는 결국 주머니 속 손을 빼 미소 띤 얼굴로 전 후보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전 후보는 이날 아침 2시간 동안 뚝섬역과 경동초등학교 앞에서 “안녕하세요, 전현희입니다”라고 출근길 인사를 했다.

중·성동갑에서 가장 보수적인 곳으로 꼽히는 성수동 일대 바닥 민심은 민주당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20년을 살았다는 50대 조창남씨는 “여야가 허구한 날 싸워 기대가 없지만 그래도 애정이 있었던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더 크다”며 “지역구 후보는 좀 더 고민하겠지만 비례대표는 확실하게 3지대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후보는 2008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고 2016년 20대 총선 때 민주당 험지인 서울 강남을에서 당선된 이력이 있다. 전 후보는 “강남에서는 명함을 건네면 찢는 분들도 있었는데 여기서는 선거운동 일주일 만에 열기가 뜨거워지는 걸 느낀다”며 “엔돌핀이 팍팍 솟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전 후보를 알아보고 “TV에서 봤다”며 “파이팅”을 외치는가 하면, 기호 1번을 뜻하는 엄지척을 해 보이며 응원했다. 지나가던 덤프트럭 운전사는 차를 세우고 내려 전 후보와 함께 셀카를 찍기도 했다.

전 후보는 ‘민생전문가’를 내세우고 있다. 치과의사와 변호사 출신의 재선 국회의원으로 장관급인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내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데 적임자라는 것이다.

전 후보는 “저는 권익위원장 3년 동안 1년에 1000만건 이상의 민원을 처리했고 관계부처들과 이견을 조율한 경험이 있는 지역 발전 맞춤형 후보”라고 말했다. 또 “윤 후보는 당선되면 1.5선이지만 저는 국회 상임위원장을 할 수 있는 3선이 된다”며 “경험과 경륜에서 차이가 난다”고 강조했다.

전 후보가 내세우는 핵심 공약은 ‘아이 키우기 좋은 교육특구 조성’이다. 중·성동갑은 중학교 수가 적고 고등학교는 한 학년 학생이 100명대로 소규모인 곳이 많아 학부모들 사이에선 내신에 불리하다는 불만이 크다고 한다. 전 후보는 “성수를 교육특구로 만들어 초·중·고등학교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고 명문 고등학교를 유치해 젊은 세대가 오래 살 수 있는 ‘교육 일번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 후보는 이와 함께 주민기피시설인 용답동의 중랑물재생센터를 지하화해 체육시설과 숲을 조성하는 ‘그린 정원도시 성동’, 뚝섬역·성수역 일대를 패션·IT·엔터테인먼트가 집약된 4차산업 중심 플랫폼 도시로 만드는 ‘글로벌 복합첨단산업밸리’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전 후보는 권익위원장 시절 직접 조사한 윤 후보 부친의 땅투기 의혹도 겨냥했다. 그는 “저는 윤석열 정권의 검증도 통과한 청렴하고 깨끗한 후보이고 윤 후보는 부친의 부동산 문제로 의원직을 사퇴한 후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전 후보가 ‘여전사’로서 서울 선거에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하고 있다. 전 후보는 “지역을 다녀보니 윤석열 정권 심판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매우 뜨겁다”며 “여전사로서의 역할도 당연히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동환 정우진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