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목월(1915∼1978)의 미발표 시 166편이 공개됐다. 생전에 발표된 시 200편에 육박하는 분량의 미공개 시가 박목월이 남긴 80권의 육필 노트 속에 잠들어 있었다. 박목월은 ‘청록파’와 서정시인으로 규정돼 왔지만 새로 공개된 시는 사회 현실을 다룬 작품이나 산문시, 연작시 등을 포함하고 있어 박목월 문학의 품이 훨씬 넓었음을 알려준다.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목월의 미공개 시를 공개했다. 박목월의 장남인 박동규(84)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때껏 숨어있던 시들을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45년이 지나서야 발표하게 됐다”면서 “아버님의 시가 적힌 노트는 어머니가 보자기에 싸서 장롱에 보관해온 것으로 전쟁 때에는 천장 속에 숨겨 놓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명예교수는 뒤늦게 아버지의 시를 공개한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미공개 시들은 발표하기 싫어서, 발표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또는 시집에 어울리지 않아서 뺏을 수도 있다. 그런 아버지 마음을 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박목월 시 생애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이것들을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솔직히 겁도 난다”고 말했다.
우정권 단국대 교수를 중심으로 방민호(서울대), 유성호(한양대), 박덕규(단국대), 전소영(홍익대) 교수가 모여 지난해 8월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를 구성하고 박목월의 유작 노트를 정리했다. 노트는 박 명예교수 자택에서 보관해온 62권에 경주 소재 동리목월문학관에 기증된 18권을 합해 총 80권이 된다. 박목월이 공식 등단하던 1939년 무렵에서부터 시작해 1970년대 타계 전까지 작성된 것으로 시인으로 활동하던 거의 전 생애를 포괄한다.
우정권 교수는 “우리는 아는 박목월은 목가적, 서정적이다. 이번에 발굴된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 상당히 많다”면서 “해방의 감흥을 다룬 ‘무제’나 6·25 전쟁에서 고아가 된 구두닦이를 묘사한 ‘슈산보오이’, 미래 조국의 희망을 노래한 ‘결의의 노래’ 같은 시들은 사회 현실을 다룬 작품들로 기존 박목월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 박목월 시는 짧은 단형적 형태가 특징인데, 새로 발견된 시들에는 장시나 연작시도 있다”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또 “1939년 노트는 등단 전의 기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며 “노트에는 하나의 시를 여러 번 고쳐 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창작 과정에서 내면의 흐름이 어떠했는지, 시어 하나, 행 하나를 바꾸는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트 속에 들어 있는 시들은 460편에 이른다. 발간위원회는 이중 발표작을 빼고, 미완성작을 제외하고, 작품 형태와 일정한 수준을 갖춘 시들을 선별해서 166편을 공개했다.
유성호 교수는 “미공개 시 중에는 고향 경주에 대한 시가 있고, 타향살이를 하던 제주를 그린 작품도 있다”면서 “특히 ‘용설란’이란 시는 어눌하게 살아가는 시인 박목월과 용설란을 동일화한 작품으로 걸작이다”라고 평가했다. 방민호 교수는 “박목월이 이름 없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작품들도 있다”면서 “‘슈산보오이’는 완성도가 높은 시이며, 사람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깊고 따뜻한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전소민 홍익대 초빙교수는 “박목월이 신앙에 발을 딛게 된 내적 이유를 보여주는 시편들이 있다. 타개하기 몇 년 전에는 기독교 시 창작에 몰두했다”면서 “박목월 종교시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굴작 중에는 동시로 볼 수 있는 시도 60∼70편 된다. 박덕규 교수는 “박목월은 24편의 동시를 발표했고, 동시문학계에서도 맨 앞자리에 놓이는 중요한 시인”이라며 “노트에서 발견한 시를 보면 동시로 분류할지 시로 분류할지 알 수 없는 형태가 많다. 엇비슷한 상황을 두고 시와 동시를 함께 창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고 얘기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