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으로 가자지구의 참상을 온몸으로 증언했던 10살 소년이 끝내 사망했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영양실조 상황 속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던 가자지구의 10살 소년 야잔 카파르네가 지난 4일 숨졌다고 보도했다. 앞서 야잔의 사진이 SNS 등에서 확산하며 가자지구의 열악한 식량 상황이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창백한 소년의 얼굴에는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얼굴뼈가 움푹 들어간 곳마다 피부는 처져 있다. 눈은 푹 꺼졌고 턱은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다.
야잔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었다. 전쟁 전에는 비영리단체가 파견한 물리치료사의 자택 치료와 약물 덕분에 걷지 못해도 수영은 할 수 있는 정도까지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다. 야잔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아침 식사로 계란과 바나나 등 부드럽고 영양가 높은 식단을 짰는데 피란 중에는 이를 구할 수 없었다. 비위생적인 대피소에 있을 수 없어 몇 번이나 거처를 옮겨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야잔의 가족은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의 알아우다병원에 도착했지만 야잔은 이곳에서 숨을 거뒀다. 야잔을 치료한 소아과 의사 자브르 알 셰어는 야잔이 영양실조와 호흡기 감염증을 앓고 있었다며 면역체계가 악화한 원인으로 영양 부족을 지목했다.
구호단체들은 가자지구에서 영양실조로 인한 주민들의 죽음 행렬이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고 경고한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가자지구 보건부 자료를 인용해 “지난달 말부터 최근까지 어린이와 노인 등 20명이 굶주림과 탈수를 겪으며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 가자지구 북부로 구호품을 실은 트럭이 진입하려다가 실패하는 일도 발생했다. OCHA에 따르면 지난 5일 구호품을 실은 채 가자지구 북부로 향하던 세계식량계획(WFP)의 트럭 14대가 가자지구 남·북부를 가르는 와디가자 검문소에서 가로막혀 진입하지 못했고, 지난달 18~19일에도 2차례에 걸쳐 가자지구 북부로 구호품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구호단체 기아대책행동의 헤더 스토보 박사는 “어린이가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에서 병에 걸리면 결국 바이러스가 사망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영양실조가 아니라면 아이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전쟁 전부터 가자지구 주민들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유엔은 전쟁 전 가자지구 주민 약 120만명이 식량 지원을 필요로 하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당시에도 가자지구의 5세 미만 아동 약 0.8%가 급성 영양실조 상태였다.
전쟁 발발 후 약 5개월간 이 수치는 악화했다. WHO는 지난달 가자지구 북부의 2세 미만 아동 중 약 15%, 남부는 5%가 급성 영양실조 상태라고 발표했다. 분유를 탈 깨끗한 물이 없어 위기가 더욱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