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의대 증원 반대 집회에 제약사 직원을 강제로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 제약사 영업사원이 평소 의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개인적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는 주장을 내놔 이목을 모았다.
자신을 제약회사 영업맨이라고 소개한 A씨는 5일 디시인사이드 의학 갤러리에 ‘제약회사 영업맨의 일상 알려줄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자신과 한 의사가 2018~2019년쯤 나눴다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캡처해 첨부하기도 했다.
A씨가 공개된 대화를 보면 의사는 “노트북 hdd를 ssd로 교체해 달라” “한글(문서 프로그램) 깔아 달라” “A4 크기로 액자 2개 제작해 달라” 등의 메시지를 보내 갖가지 잡무를 부탁했다. 이에 A씨는 별다른 불만 표시 없이 “네 원장님” “가보겠습니다”라며 수락했다.
의사는 “긴급 SOS”라면서 “원무과 직원을 뽑아야 하는데 이력서 검토하는 게 힘들다. 이력서 확인해 줄 수 있냐”는 부탁까지 했는데, A씨는 여기에도 “넵”이라고 답했다.
A씨는 “이 원장님은 진짜 착한 편”이라며 “다른 원장들의 더한 메시지도 있는데 개인정보도 있어서 못 풀겠다. 요즘 점점 더러운 거 시키는데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오늘 일정은 오전 8시 원장 집에 가서 아이 어린이집까지 모셔주기, 오전 10시30분 의원 화장실 (변기) 막힌 거 뚫으러 가기, 오후 12시30분 원장 점심 초밥 배달(1만9000원), 오후 3시 어린이집에서 도련님 모셔서 집에 데려다주기, 오후 7시 병원 식구들 저녁식사 결제해 주러 가기”라고 덧붙였다.
A씨의 글에는 제약사 영업직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거 영업맨이면 기본으로 하는 거 가지고 힘들다 하지 맙시다”람 자신의 처지를 반어적으로 한탄했고, 다른 사람은 “(의사가) ‘여름에 가족들이랑 하와이 가려고 하는데 일정 좀 알아봐 달라’고 해서 정말로 일정만 딱 알아봐주면 다음 달 발주 바로 0으로 찍힌다”고 주장했다.
이를 접한 대다수 네티즌은 “이 정도일 줄 몰랐다” “현대판 노예 아닌가” “사람 위에 사람 있나” “거의 몸종 수준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의사단체 집회에 제약사 직원이 동원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제약사들은 “구체적으로 파악된 것은 없다”면서도 해당 논란이 의사와 제약업계 간 리베이트 문제나 갑질 논란, 불매운동 등 다른 사안으로 번질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를 앞두고 전날 직장인 익명 게시글 앱인 블라인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일부 의사들이 제약회사 영업사원 등을 대상으로 집회 참석을 강요한다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글 작성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청은 바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서며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수사에 착수해 엄정 조치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도 집회 당일 관련 의혹에 대해 ‘무관용 원칙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측은 해당 글 작성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성명불상자 A씨를 고소하고 “피고소인은 존재하지 않는 일을 허위로 작성해 고의적으로 ‘의사들’이라는 단어를 써서 본회의 회원들에 대한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밝혔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