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의 일종인 다발골수종을 앓고 있는 60대 A씨는 편도선이 부어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내시경 검사를 예약했다. 하지만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하면서 A씨는 갑작스럽게 내시경 검사 취소를 통보받았다. A씨는 “현재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아 매우 힘든 상황”이라며 “진통제를 복용하며 버티고 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나면서 A씨처럼 수술·검진 취소 등으로 불편을 겪는 환자들의 피해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환자 단체들은 전공의들이 의사의 본분에 맞게 병원으로 복귀해야 한다며 연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5일 호소문을 통해 “정부와 정치인, 의료계는 편안한가. 의료공백 속에 우리 중증질환자들은 긴장과 고통으로 피가 마르고 잠을 못 이루고 있다”며 “의료계는 ‘나 몰라라’하며 의료 현장을 떠났고, 정부가 준비한 대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연합회는 또 “환자단체를 포함한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회 소속 한국췌장암환우회 관계자는 “당장 죽을 병이 아니라며 2주째 항암이 미뤄지고, 항암을 견뎌 겨우 얻은 수술이 응급이 아니라는 이유로 취소되는 상황”이라며 “생명을 구걸이라도 하고 싶다. 전공의들은 고귀한 정신을 훼손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은 여전히 미미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오후 8시 기준으로 신규 인턴을 제외한 레지던트 1∼4년 차 9970명 중 90.1%에 해당하는 8983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4일 오전부터 복지부 직원들이 점검을 나왔지만 복귀한 전공의는 없다”고 전했다. 단국대병원 관계자도 “복지부가 현장점검을 한다는 얘기가 나왔는데도, 전공의들은 의료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전날부터 면허정지 처분을 밟고 있다. 이어 전공의들의 주동 세력을 중심으로 경찰 고발도 검토 중이다.
시민단체들도 정부의 엄정 대응을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사 면허는 환자를 살리라고 국가가 의료 독점권을 부여한 증표인데, 의사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환자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며 “불법 행동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사들의 ‘특권의식’을 깨야 왜곡된 의료 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차민주 기자 la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