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특수교사를 대상으로 열린 교권보호위원회가 지난 5년간 4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교보위 개최 건수는 크게 늘었지만, 교육활동 방어 장치로서의 실효성은 여전히 낮아 특수교사들이 교권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웹툰 작가 주호민씨 아들을 담당한 특수교사가 기소된 사건을 계기로 특수교사 교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늘었지만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은 먼 것이다.
5일 국민일보가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울산·전북 비공개, 충남 자료 부존재)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2019~2023년 특수교사 대상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특수교사들을 대상으로 열린 교보위는 2019년까지만 해도 21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83건으로 395.2% 증가했다.
교보위는 교사가 학생·학부모에게 폭행·폭언 등 교권침해를 당했을 때 열게 돼 있는 회의다. 교사 입장에서는 인간적인 권리를 보장받고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최후의 방어수단’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일 키우지 말자 인식 만연”
그러나 적지 않은 특수교수들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을 크게 키우지 말자’는 학교 현장 분위기 탓에 교보위에 큰 기대를 걸지 못하고 있다고 증언했다.1년간 가르친 특수학생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해 정신적 충격을 입고 휴직한 10년차 교사 김모(41)씨는 “학생들이 교사 얼굴에 침을 뱉고 할퀴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저희에게는 ‘맞거나 다칠 일 겪는 거 처음부터 알고 이 일 시작한 거 아니냐’는 인식이 당연하게 깔려 있다”고 토로했다.
초등학교 특수학급 교사 정모(30대)씨는 “‘교사들은 피해를 입었더라도 가해자가 학생이면 한 번 더 참고 기회를 주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만연하다”며 “특수교사들은 특히나 포용적인 경향이 강할 거라는 사회적인 시선이 있기 때문에 더욱 이런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중학교에서 20년째 특수교사를 하고 있는 장모(40대)씨도 “특수교육 대상 학생의 돌발 행동들이 고의적으로 괴롭히기 위한 목적의 폭력 행동인지를 구분할만한 기준이 없는 상태”라며 “만약 고의적이라고 할지라도 해당 학생을 대상으로 교보위를 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어 “사회적인 인식뿐 아니라 학부모, 학교 관리자 모두 ‘특수 학생은 원래 그렇다. 그런 아이들을 왜 이해 못 하나’ 등의 차별적 자세로 사안을 대한다”며 “교사 개인이 감당하거나 치료비를 자비로 감당하는 것이 더 나을 정도”라고 말했다.
특수교사 89%는 학생에게 다친 경험
실제 지난해 전국특수교사노조에서 전국 특수교사 29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고의성은 없지만 본인이나 상대방을 해칠 수 있는 장애학생의 ‘도전행동’으로 다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교사의 비율은 89%에 달했다.하지만 이중 96%는 부상으로 인한 치료비 지원을 받지 못했다. 또 특수교사의 96%는 교권 침해 행위에 대한 교보위를 개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보위를 열더라도 이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로부터 역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장 교사는 “교보위의 존재와 신고 절차를 알고 있고, 피해를 입은 사실이 뚜렷한 교사일지라도 ‘괜히 교보위를 열었다가 혹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면 어떡하나’ ‘교육청에 민원이라도 넣으면 어떡하나’는 부담감을 가진다”고 했다.
교보위 개최를 통해 교권침해 사안을 인정받은 김 교사도 “개최 전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우려가 굉장히 컸다”며 “사안 조사 과정에 투입되는 직원들은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적인 시선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보니 강압적인 행동으로 보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 바르게 앉아야 해’라고 말하는 것조차도 아동학대로 신고될 수 있다”며 “특수교사 커뮤니티에는 ‘손목 잡는 것만으로도 기소될 수 있으니 아예 뒷짐만 지고 있고 위험한 행동할 때만 조심해라’라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한다”고 했다.
교보위가 열린다 해도…
특수교사들은 공통적으로 ‘교보위가 열린다고 해서 사안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
교보위가 열리고 나면 사안 조사를 위해 교사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 즉, 학생의 가해사실을 세부적으로 밝혀야 하고 이 과정에서 학부모, 학생과의 갈등이 발생할 소지도 크다. 김 교사는 “어떤 학부모라도 내 아이의 어떤 행동으로 인해 담당 교사가 문제를 제기할 입장을 취했다는 것에 바로 수긍하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교보위 진행 과정에서 갈등 상황을 겪었더라도 특수교사들은 계속해서 해당 학생과 학부모를 마주해야한다. 김 교사는 “학교당 특수학급은 한 반밖에 없으니 특수교사들은 일반교사와 달리 1년이 지나도 새로운 학생들을 맞는 게 아니다”라며 “교보위를 통해 최종적으로 교사들에게 반년에서 1년까지 휴직 판정이 내려져도 그 학생이 졸업하지 않는 이상 같은 학생을 계속 봐야 하는 만큼 힘든 상황은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사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의무적으로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고, 학교에 특수교사는 통상 한 명밖에 없으니 교사는 결국 그 아이를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것”이라며 “교사를 다른 곳으로 긴급하게 보낼만한 제도도 없어 특수교사들은 그냥 피해자로서 보장받을 권리를 포기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 서울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교권보호 제도 활성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는 교권 강화를 주요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그중에는 학교 개별적으로 실시했던 교보위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해 조치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고 운영을 활성화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올해부터 이런 개정 사항이 반영된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교육계의 우려는 여전하다. 모든 학교가 새학기를 맞았음에도 여전히 세부적인 교보위 시행 규칙이 배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현재 교보위가 어떻게 이관될지 매뉴얼조차 내려오지 않은 상황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주관이 시도교육청으로 옮겨질지라도 사안 조사는 학교 차원에서 그대로 할 것이다’는 얘기도 돈다”며 “이렇다면 결국 교보위가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되지 않고 교보위 진행 과정에서 달라지는 점도 없을 공산이 커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장 교사도 “교육 현장에서는 조금 더 명확한 기준을 필요로 하고 있다”라고 했다.
김 교사는 “교사가 상해를 입었을 때 학생의 장애로 인해서 생긴 문제 행동이라고 하면 사실 문제 행동과 교사가 입은 상해를 별개로 봐야 한다. 이런 것을 정확히 구분할만한 특수교육전문가가 (학교 구성원으로) 포함돼야 하지만 매뉴얼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상태라 이런 전문가가 포함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소윤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