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왜곡·폄훼 속수무책…4년 공들인 진상규명 ‘보고서’ 부실

입력 2024-03-04 15:01

‘모니터링은 멈추고 보고서는 부실하고...’

5·18민주화운동의 왜곡·폄훼를 막고 진상규명을 완결하기 위한 5월 관련 단체의 활동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2019년부터 지속해온 사이버 대응은 예산 부족으로 중단되고 4년여의 진통을 거친 국가 차원 최초의 5·18 진상규명 종합 보고서는 부실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5·18기념재단은 “5·18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온라인 영상과 게시글, 댓글 등을 찾는 모니터링 활동을 올해 들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극우 인사 등의 편향된 악성 게시물에 대한 사이버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시가 편성한 2억원의 예산 가운데 1억5350만원이 삭감돼 모니터링 전담 요원 인건비를 지급할 수 없게 된 데 따른 것이다.

기념재단은 전담 요원과의 재계약이 무산된 이후 대폭 줄어든 예산으로 인공지능(AI) 업체에 용역을 의뢰해 허위사실 등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과 증거자료 캡처 등 수집활동을 간헐적으로 이어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소수의 검색어를 활용한 특정 AI 외주업체의 업무대행은 왜곡·폄훼가 극심한 특정 사이트 3곳에만 국한될 것으로 파악돼 엄정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로 인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민주화를 외친 5·18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 등으로 묘사한 왜곡·폄훼 게시물을 걸러내지 못하게 될 공산이 커졌다.

인터넷 등에는 그동안 교묘하게 진화된 허위사실 게시물이 꾸준히 나돌고 있으나 이를 적발해 삭제를 요청하고 고소·고발하는 사이버 대응의 첫 단계인 모니터링 기능은 사실상 발이 묶이게 됐다.

2020년 1월 출범 이후 지난달 말 4년여의 활동을 결산한 5·18 진상규명조사위 최종 보고서는 ‘암매장’을 ‘아매장’으로 표기하는 등 오·탈자가 많고 핵심 쟁점에 대한 조사내용 역시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비난이 줄을 잇고 있다.

1980년 당시 광주 도심에서 발생한 ‘집단 발포’와 ‘헬기 사격’ 등 핵심쟁점에 대해 5·18 때 투입된 계엄군의 ‘자위권 확보’ ‘단정할 수 없다’는 진술 등에 주로 의존했다는 평가다. 신군부의 쿠데타에 의한 정권찬탈과 헬기 사격에 대한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양비론적 시각을 굽히지 않아 진상규명에 한계를 드러냈다.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계엄군 내 발포 명령자와 암매장지를 가려내기 위한 증거수집도 없었을 뿐 아니라 당사자 진술거부를 이유로 왜곡·편향된 군과 경찰 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부분도 적잖다는 것이다.

진상규명위는 또 출범 초기 의욕적으로 추진한 신군부 지휘부에 대한 청문회조차 한 번도 개최하지 않고 포기한 채 활동을 마감했다. 특별법을 통해 부여한 강제조사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출범 초기 5·18 청문회를 개최하려다 우여곡절 끝에 취소했고 한동안 집행부 불신임 등 극심한 내홍을 겪은 탓으로 풀이된다.

진상규명위는 보고서 공개시한인 지난달 29일에 맞춰 조사결과서·요약문을 뒤늦게 공개했다가 ‘전원위’ 승인을 거치지 않았다며 이례적으로 다시 이를 모두 회수해 마지막 결산과정까지 허술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이에 따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 등은 보고서 회수 조치 직후인 지난 2일 “공개하지도 않은 자료에 대한 시민여론을 수렴한다는 것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이례적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며 5·18 진상규명을 간절히 염원해온 광주시민들은 실망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5·18 진상규명위는 출범 직후 “국가 차원의 조사를 통해 5·18의 진실을 확인하고 국민통합에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하고 4년 만에 결과물을 공개했으나 광주 시민사회단체 등은 종합보고서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과거 조사보다 후퇴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5월 단체 관계자는 “북한군 개입설, 집단발포 경위, 암매장 등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규명된게 없지 않으냐”며 “44년 동안 베일에 가려진 그날의 진실이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와 함께 어떻게든 드러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