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70년 여름 교회 청년부에서 여름 수련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청년들은 수련회 장소를 먼저 답사하고 몇 차례씩 예비 모임을 가졌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종로5가에 있는 새한교회였다. 나는 이 교회 영아부를 맡고 있었다. 목사님은 마치 친정아버지처럼 나를 늘 살펴주었다. 어느 날, 목사님 사모님으로부터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목사님 집은 시골 친척 조카들과 처제까지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교회학생들 중 자취생들이 많아 주일날은 연거푸 허기진 학생들에게 밥을 먹이는 헌신이 몸에 밴 분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목사님은 자연스럽게 말씀하셨다. “동생들 데리고 지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사람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믿고 우선 내가 좋은 청년을 소개해 줄 테니 교제해 보렴. 그리고 나중에 결혼해서도 우리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자.”
나는 거침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꼭 이 교회에 남아서 목사님 곁에서 신앙생활 하겠노라고 야무지게 대답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 나는 노동청에 서류를 접수하고 앞서 미국에 취업간 친구들을 따라 떠날 꿈을 안고 있을 때였다.
스물다섯 살인 나는 도대체 어떤 청년인지,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밤늦도록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사귄 친구가 영어성경강의를 듣자고 했다. “넌 성경읽기 좋아하니까. 영어성경강의를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일석이조라는 생각에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듣기로 했다. 그날 주일 오후, 성경 강의실의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 나를 보며 내 이름을 불렀다. 빨리 들어오라고 환영한다는 말에 나는 의아했다. 그 교실에는 신입 대학생들이 가득했다.
그는 영어 성경 지도 교사였고 내 친구는 그와 함께 고등부 교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친구는 그 청년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S공대 졸업반이고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라고 얘기를 해 주었다.
나중에 목사님이 그 청년에 대해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를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이번 하계 수련회에 함께 가서 진지하게 사귀어 보라고 했다.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목사님은 내 문제를 이미 기도로 준비하셨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내가 무엇이기에 나를 저토록 사랑하며 내 장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 주시는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기로 했다.
#2
임초리는 이미 예정된 곳이었을까. 수양회를 떠나기 이틀 전, 목사님은 내게 미국행의 꿈은 잠시 미루고 우선 믿음으로 사는 청년을 만나보라고 권유하셨다. 지난번 내가 말했던 그 청년 안면이 전혀 없느냐며 내게 물으셨다. “얘야, 그가 너를 기억하고 있던데? 어디서 만났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니?”
목사님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니 2년 전에 명륜동에 사는 장로님 댁에서 청년회의 송년 모임이 있었다. 우리가 게임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 S공대 다닌다는 그 청년과 내가 뽑혔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이 춘향이와 이도령의 대사를 외우라는 것이었다. 그는 서슴치 않고 “야~ 춘향아!”라고 큰소리로 불렀다. 그 순간, 나는 너무 쑥스러워서 속으로 교회 청년들이 무슨 춘향전을 논하느냐고 거절하면서 나는 찬양을 부르겠다고 했다.
그 당시 대학생 선교회인 CCC에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라는 찬송이 유행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찬양을 불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바로 그 청년이었다. 나는 참 맹꽁이같이 무례했다. 그 청년이 얼마나 무안했을까. 나를 신비주의자처럼 치부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어색한 만남이 있은 후 몇 주가 지났는데 교회 대학부와 청년부에서 하기 수양회에 관한 설명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청평에 있는 임초리라는 수양회 장소가 있는 마을 답사를 하고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임초리. 마을이름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당일 수양회 장소로 출발하려는 버스 앞에서 그 청년이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국애씨, 내 기억 전혀 안나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 순간, 2년 전 그의 얼굴이 스쳐왔다. 내가 그에게 주었던 무안함이 미안함으로 돌아왔다.
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청년들의 눈치를 살피며 내 곁으로 바싹 다가오더니 내 모포까지 더 챙겨왔다는 것이다. 무거울 것 같으니 수련회 장소까지 가져다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고등부 교사였기 때문에 부서가 달라서 몇 년을 같은 교회 안에 있었지만, 만나 본 일이 없었다. 내가 일하는 일터는 종로구 광교에 있는 J미용실이었다.
면접을 할 때에 내 조건은 오직 주일만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라는 내 삶의 좌우명이었기에 주일 날 쉬는 만큼 내 월급을 줄여서 취업을 했다. 그러므로 주일날이면 자유로웠으나 공교롭게도 주일날이면 신부화장이 너무 많았다. 주일예배가 끝나자마자 직장으로 뛰어가 함께 도와야 했다. 교회 청년들은 오후 시간은 언제나 교재와 친교로 서로 풍성한 사귐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였으나 나는 작은 수입으로 두 동생을 데리고 단칸방에서 부모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계속>
<봄이 오는 소리>
- 김국애
개울가에 앉았다
생기가 저들의 볼을 스치고
바람으로 빛으로 스미어
몰아쉬던 숨을 토해내더니
팔 벌려 눈물을 합창 한다
봄이 옹알이를 한다
얼음판이 깨지고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봄이 소리를 낸다
손 털고 숨 들이쉬며 초연한 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일까
그 자리에 환한 봄볕이 내려온다
씨앗은
어둠을 견디고
아픈 냉기를 참아내더니
퉁퉁 불어난 표피
속살에서 스스로 밀려 나온다
우리도 스스로 밀려 나왔다
어디까지가 막바지인지
밀착된 모든 것에서
의도와 상관없이
연둣빛 고운 속살로
스스로 분리되는 이치
당연한 것이 아니다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