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바둑 범행을 위해 인공지능(AI) 바둑 장비까지 동원한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이 사용한 장비는 시가 100만원가량 중국산 제품으로 알파고 수준의 고성능 AI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조재철)는 지난달 31일 사기 등 혐의로 A씨(64)를 구속 기소하고, 공범 B씨(60)와 C씨(56)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의 의뢰를 받아 소형 카메라 등 장비를 제작한 D씨(69)도 사기 방조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B씨는 과거 내기 바둑에서 돈을 잃었고, 복수를 하기 위해 업자를 통해 AI 바둑 장비를 사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바둑판 모양 장치에 돌을 올려놓으면 내장된 AI가 최적의 수를 찾아주는 장비다.
검찰에 따르면 B씨 등은 2022년 6~8월 대전 지역 기원 3곳을 돌아다니며 고액 배팅이 가능한 이들을 물색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밥값 내기 수준으로 상대를 가늠한 뒤 한 판당 100만원 이상으로 판돈을 올렸다.
B씨는 소형 카메라를 셔츠 단추 구멍에 몰래 달고 바둑판을 촬영했다. A씨와 C씨는 별도 공간에서 B씨의 대국을 AI 바둑판에 재현한 뒤 AI가 알려준 착수 지점을 다시 B씨에게 알렸다. B씨는 소형 이어폰을 통해 A씨 지시를 받아 이행했다. 일당은 이 같은 수법으로 피해자 3명에게서 9차례에 걸쳐 총 2620만원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을 담당한 손성민(38·사법연수원 44기) 검사는 “그간의 바둑 사기 범행은 바둑 고수가 원격지에서 대리 바둑을 두는 형태였는데 이를 AI 기사가 대체한 것”이라며 “고성능은 아니지만, 일반인 상대 사기 범행에는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B씨는 피해자 중 한 명이 과거보다 월등하게 좋아진 바둑 실력을 의심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피해자는 내기 바둑을 두는 B씨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셔츠 단추 구멍의 소형 카메라를 찾아냈고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 수사에서는 B씨와 C씨가 저지른 범행만 적발됐고 두 사람만 검찰 송치됐다. 검찰 추가 수사 결과 A씨의 존재가 드러났다. A씨는 어느 정도 바둑 실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손 검사는 AI의 착수 지점대로만 두면 압도적 차이로 상대방을 이기게 되고 이 경우 범행을 의심받을 가능성도 커지는 만큼, 실력을 적절히 조절해주는 외부 조력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추가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기원 출입 장부를 토대로 B씨와 C씨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분석했다. 범행 날짜마다 이들이 A씨와 1~5시간씩 장시간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C씨가 장비 제작을 의뢰한 주소지를 확보해 수사한 결과 사기도박 장비 전문가 D씨가 소형 카메라와 이어폰을 제작해준 사실도 밝혀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