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이탈하는 가운데 ‘빅 5’ 병원 중 하나인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측에서 간호사들에게도 ‘강제 연차’를 쓰도록 지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0일부터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시작하며 기존에 잡혀있던 수술이 대거 취소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9000명이 넘는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하고 임용 예정이던 인턴마저 출근을 거부하면서 많게는 50% 이상의 수술이 취소·연기되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이탈에 맞춰 소속 간호사들에게 연차 사용을 강제했다는 증언이 나와 논란이다. 전공의 부재로 수술이 대거 취소된 만큼 간호사도 그에 비례해 출근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인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현직 신촌세브란스 간호사들은 원하지 않는 날짜에 휴가를 사용하도록 지시 받았다고 국민일보에 말했다. 20대 간호사 A씨는 “분명 휴가 사용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는데도 중간관리자가 근무표에 휴가를 기입해둔 채로 배포했다”고 말했다. 30대 간호사 B씨도 “일단 병원 측에서 임의로 휴가 사용일자를 정해주고, 휴가를 쓰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근무를 조정하라는 식으로 지시했다. 사실상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간호사에게 연차를 강요하는 대학병원 내 문화는 최근 생긴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 여파로 일선 간호사에게 휴가 사용을 강제하는 상황이 더 빈번해 질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노조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전공의 파업 여파로 간호사에 대한 강제 연차 사용 요구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며 “이에 대응해 대자보도 붙이고 병원을 순회하면서 연차를 강제로 사용하게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선 집단사직 1주일밖에 안 돼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등 불가항력적인 사정으로 내원 환자가 줄어들었다면 의료인으로서 (강제 연차 사용에 대해) 이해를 조금이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나”며 “(전공의들이) 환자를 두고 그냥 나간다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상황이다. 비단 간호사뿐 아니라 임상병리사 등 다른 직종들도 불편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현행법은 사업자가 직원에게 연차 사용을 강제하거나 특정 날짜에 연차를 사용하도록 지정하는 것을 금지한다.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을 보면 사용자는 연차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줘야 하고, 그 기간에 대해서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통상임금 또는 평균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병원 공식 입장은 간호사들에게 절대 연차 사용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매일 아침 관리자들에게 이 사항을 강조할 정도”라며 “혹시 특정 간호사가 연차를 강요받은 일이 있더라도 병원 공식 정책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